▲백제인들이 세운 풍납토성. 서울시 송파구 소재.
김종성
이런 점을 보면, 소서노가 남자애 둘을 데리고 재가한 재혼녀였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는 주몽과도 헤어졌으니, 그는 결혼 2회, 사별 1회, 이혼 1회의 기록을 남긴 셈이다. 재혼·이혼 경력에다가 2차례의 건국 경력까지 갖고 있으니, 한국사에서는 꽤 독특한 유형의 여성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 같았으면 "이 여자, 팔자 한 번 셌구나"라며 "에이!" 하면서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자신은 조강지처를 내쫓고 젊은 후처를 들였을 뿐만 아니라 첩을 여럿이나 두고 있으면서도, 소서노 같은 여인들의 재혼 경력만큼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게 조선시대 선비들이었다.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하여 처자식 먹여 살리기도 힘들어 하면서,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위대한 소서노 같은 여인들을 단지 '재혼녀'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해버릴 수 있었던 게 조선시대 선비들이었다.
사실, 그런 태도는 그들이 배운 경전에 근거한 것이었다. 사서오경(四書五經)의 하나이자 고대 예법의 백과사전인 <예기> '곡례' 편에서는 "고모나 자매나 딸이 시집갔다가 돌아오면, 형제들은 (그와 함께) 같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같은 그릇으로 먹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하늘처럼 떠받드는 경전에서 이렇게 가르쳤으니, 조선시대 사람들이 이혼녀나 재혼녀에 대해 '두드러기 반응'을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재혼녀 소서노에 대한 백제인들의 태도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 사람들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정서나 인식이 백제인들에게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온조왕 본기'에 따르면, 소서노가 죽은 지 4년 뒤인 온조왕 17년에 백제인들은 소서노를 추모하는 사당을 세우고 그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사당을 세웠으므로, 그 후에도 정기적으로 소서노를 위한 추모제를 지냈을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다.
이러한 백제인들의 태도는 단순히 소서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재혼녀 혹은 이혼녀에 대한 백제 사회의 정서나 인식을 표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적어도 그들이 색안경을 끼고 재혼녀나 이혼녀를 바라보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 조선시대 사람들 같았으면, 아무리 대단한 여인이 있다 할지라도 그가 이혼녀이거나 재혼녀라면 그의 능력과 인격을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그 대상이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였더라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백제인들의 태도는 비교적 공평했다고 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에 대해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처럼 백제에서 국가적으로 숭배되는 인물 중 하나가 재혼녀였으니, 사회적으로도 재혼녀나 이혼녀가 부당한 차별을 받는 일이 조선시대보다는 훨씬 더 적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 재혼녀 소서노를 숭배하는 상황 속에서 재혼녀나 이혼녀에 대한 차별의 논리가 힘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상이 전부는 아니다소서노의 사례에서 얻어야 할 본질적 메시지는, 백제인들이 재혼녀를 어떻게 인식했느냐가 아니다. 이 사례에서 배워야 할 더 중요한 교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여성상'이라는 것이 실은 '조선시대 여성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조선시대 여성상'에 기초해서 '전통 여성상'이라는 것을 확립하고 그런 전제 위에서 "한국적 여성상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소 5000년이 넘는 한국사에서, 조선시대 500년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여성상이란 것은 문자 그대로 조선시대의 여성상에 불과할 뿐이지, 결코 한국의 전통적 여성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 여성상을 구축하려면,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전 모든 시대의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평균적인 여성상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비단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부문에서, 10%도 안 되는 조선시대를 갖고 한국사 100%를 '함부로' 규정해온 우리의 기존 태도. 한국 문화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려면, 반드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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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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