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포구 함상공원
성낙선
강화대교를 넘어서는 곧바로 김포시 해안가에 진을 친 덕포진과 대명포구를 찾아간다. 덕포진은 해상의 군사 요충지로 배를 타고 한강이나 임진강으로 접근하는 외적을 포를 쏴서 막는 기능을 수행했다. 마주보는 곳에 강화도의 초지진이 있어 강화해협을 지나가는 외적에 협공을 가할 수 있었다. 이곳 역시 초지진이나 광성보와 마찬가지로 신미양요를 겪었다. 덕포진 역시 광성보의 포대 진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덕포진 가장 안쪽에 손돌목 묘가 있다.
강화대교에서 초지진까지 내려가는 길은 해안선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를 택했다. 처음엔 농로를 개척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농로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농로 한가운데에서 추수를 돕는 트럭에 막혀 되돌아 나와야 했다. 어제 한동안 농로에서 헤맨 기억도 있고 해서 바로 도로로 들어섰다.
대명포구에 최근(지난 8월) 함상공원이 들어섰다. 해병대 상륙함으로 임무를 수행하다 2006년 퇴역한 운봉함을 군사 체험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함상공원답게 내부 관람 시설은 최상이다. 하지만 특별히 눈여겨볼만한 대목은 그다지 많지 않다. 월남전에 7회나 참전했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대명포구에 게와 새우젓 등속을 사러 온 사람들이 북적인다. 평일인데도, 여느 시장의 주말 풍경 같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모두 정신없이 바쁘다. 사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낮은 가격을 치르려고 하고, 파는 사람은 생물이 조금이라도 더 신선할 때 팔아넘기기 위해 애를 쓴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번잡한 어시장을 만났다. 대도시에 가까운 이점을 톡톡히 보고 있다. 대명포구는 육지의 최북단에 있는 포구다.
초지대교에서부터는 해안가 철책 아래 도로를 따라 달렸다. 그런데 도로가 만들어진 지 꽤 오래된 탓인지, 2차선 도로에 갓길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로가 차들로 발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다. 게다가 길가에 잡풀이 무성하고, 아카시 같은 나무들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어 자전거를 타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도로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길을 어떻게 빠쟈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승용차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스쳐 지나갈 만한 공간이 생기는데, 대형버스나 덤프트럭 같은 것이 지나갈 때는 대책이 없다.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 여러 차례 지나갔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되돌릴 방법도 없다. 외통수에 걸린 셈이다.
풀잎에 채이고, 나뭇가지에 얻어맞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가는데 그나마 30여 분을 달린 후부터는 교통 정체로 길가에 오도 가도 못한 채 서 있어야 했다. 그때부터 도로 위에 서 있는 차들을 피해 앞으로 나아가는데 사생결단의 순간을 여러 차례 맞이했다. 이 길의 대부분은 공사 구간에 속한다. 도로가 엉망진창인 구간도 상당하다.
해안가 길이라고 해서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곳에서 낭만은 주워 먹으려고 해도 없다. 바다는 철책과 언덕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바닷가 공단 구역을 가로질러 지나가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한마디로 자전거를 타기 힘든 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할 이유도 없는 길이다.
여기에서 꼭 해안선을 고수해야 하냐는 문제에 봉착한다. 해안선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달리다 보니, 비록 길은 있어도 자전거를 타고 가기 어려운 길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러저러하게 자전거를 타기 좋지 않은 요소들이 있는데도 꼭 해안선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가야만 하는지 의문이 든 것이다.
즐거워야 할 여행길이 자칫 잘못하면 온갖 위험과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하는 모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해안선을 포기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길은 수만 갈래로 도처에 깔려 있다. 그중 어느 길을 가야 할지를 경정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 길이 자전거여행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것은 지도를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직접 가봐야 안다. 지도가 가진 맹점이 길의 유무를 그려 넣은 것 외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거기에 관광지나 주요 이정표를 표시하고 있는데 그러한 정보는 지나치게 평면적이어서 길의 실체를 알기 어렵다.
자전거여행자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정보는 전혀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갓길이 있는지 없는지만 알 수 있어도 꽤 도움이 될 텐데 기대난망이다. 공사중 표시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지도 자체가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지도를 절대적으로 과신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