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비노항의 항만도로포장도 안 된 진흙길이었다.
박도
폴더를 닫고 손목시계의 시침을 12시에서 1시로 돌렸다. 13시 20분 동춘호에서 내렸다. 지루비노 입국장은 허허벌판에 우중충한 창고 같은 건물이 세워져 있는 게 꼭 한국전쟁 직후의 모습이었다.
짙은 초록빛 군복을 입은 러시아 남녀 군인들이 근엄하게 서서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는데 그 제복에 나는 그만 겁을 먹고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하였다.
몇 해 전 조중 국경지대인 단동에서 압록강을 촬영하다가 중국공안에게 걸려 된통 혼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공안보다 더 무서운 러시아 군인들이 아닌가.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대부분 승객들은 입국장 정류장에 서 있는 훈춘행이나 블라디보스토크행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그곳에 조경제 씨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갑자기 내 손전화가 불통이었다. 무턱대고 차들이 빠져나가는 진흙길을 일 킬로미터 가량 무거운 짐을 들거나 끌고서 끙끙거리며 나가자 자루비노 항만 사무실이 나오고 거기 정문에서 10여 명의 사람이 배에서 내린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서 조경제 씨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반갑습니다."그때가 오후 1시 50분이었다. 날씨는 더 없이 쾌청했다. 그 일대를 둘러보자면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는 그의 차에다 짐을 싣고는 점심도 생략한 채 크라스키노 마을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