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곳이자 동무들하고 놀던 곳에서 풀을 한 포기씩 거두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최종규
새로운 방학숙제가 더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던 저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다른 숙제라면 모르지만 곤충채집이나 식물채집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취미활동은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형하고 우표모으기를 해 왔거든요. 과목 숙제가 너무 많아 늘 힘들지, 다른 덤 숙제는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숙제가 없어도 이런 일은 언제나 으레 하고 있었으니, 으레 하던 그대로 숙제로 엮기만 하면 됩니다.
곤충채집도 함께 할까 하다가, 벌레를 아무렇게나 잡아서 죽여 모으는 일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동네를 다니며 낯선 풀을 모조리 뽑아 모으는 일을 하자고 생각합니다. 벌레 한 마리도 산 목숨이라면 풀 한 포기 또한 산 목숨인데, 이무렵 여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4학년과 5학년과 6학년 여름방학 동안, 아니 방학이 아닌 동안에도 언제나, 동무들하고 놀던 가운데 틈틈이 풀을 뽑아서 그러모읍니다. 뿌리까지 알뜰히 캐야 하지만 호미 같은 연장은 없었기에(밖에서 뛰어놀며 호미를 챙길 수는 없으니까요) 손으로 땅을 파서 풀포기를 한 뿌리 두 뿌리 모읍니다. 뽑은 풀포기는 뿌리와 잎에 묻은 흙을 잘 털어낸 다음 신문 사이에 누르고 두꺼운 책들, 이를테면 전화번호부를 위에 올리고 눌러 놓습니다. 적어도 이레쯤 눌러 놓아 납작쿵을 만듭니다.
셀로판테이프(비치는 테이프)를 가늘게 잘라서 두꺼운 도화지 하얀 쪽에 붙입니다. 뿌리가 길면 뿌리는 잘라서 옆에 붙입니다. 뽑거나 캐 온 풀마다 이름이 무엇인가는 거의 어머니가 알려줍니다. 방학을 하기 앞서 제 '식물채집장'은 일찌감치 서른 장이든 쉰 장이든 꽉꽉 찹니다. 방학 동안 제 식물채집장을 꾸미려고 하는 일이란, 겉에 글씨를 종이로 파서 예쁘게 붙이기. 껍데기를 얼마나 더 예쁘고 돋보이도록 할까에 마음쓰기. 어쩌면 너무 마땅하고 자연스러울는지 모르는데, 제 식물채집장은 방학이 되기 앞서 다 이루어져 있었기에, 다른 동무하고 견주어 훨씬 높은 점수를 받을밖에 없고, 5학년 때 식물채집장은 학교를 통틀어 가장 잘한 방학숙제라며 '최우수'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