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15)

― '단비와의 첫 상면', '너와의 약속' 다듬기

등록 2010.07.29 19:07수정 2010.07.2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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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단비와의 첫 상면

.. 단비와의 첫 상면을 회상하며 그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  <미국 수피즘 협회/우계숙 옮김-꼬마 성자>(정신세계사,1989) 203쪽


'회상(回想)하며'는 '떠올리며'나 '생각하며'나 '돌이키며'로 손봅니다.

 ┌ 상면(相面)
 │  (1)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 봄
 │   - 몇십 년 만에 상면이 이루어지자
 │  (2) 서로 처음으로 만나서 인사하고 알게 됨
 │   - 그분과는 이미 상면이 있었다
 │
 ├ 단비와의 첫 상면을
 │→ 단비와 처음 만날 때를
 │→ 단비와 처음 마주한 때를
 │→ 단비를 처음 보던 날을
 │→ 단비를 처음 알게 되던 날을
 └ …

'상면'은 '만남'으로 고쳐써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쳐 주어도 "단비와의 첫 만남"처럼 적는 분이 제법 되리라 봅니다. 이리 되면 고치나 마나인 셈입니다만, 지금 사람들 말씀씀이는 고개 넘어 또 고개예요.

보는 눈길에 따라 다를 테니, 이런 말씀씀이도 문화이고 삶이고 흐름입니다. 말법이든 말투든, 또 생각이든 삶이든 한결 낫거나 올바른 쪽으로만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오늘날로서는 일제강점기 찌꺼기이든 어설픈 번역투이든, 토씨 '-의'를 어느 곳에나 자유롭게 붙일 때에 내 생각이나 뜻을 나타내는 데에 훨씬 어울린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그렇고 글을 읽는 사람도 그러할는지 모릅니다.

ㄴ. 너와의 약속


.. 너와의 약속을 꼭 지킬게 ..  <토우마 (2)>(서울문화사,2009) 187쪽

'약속(約束)'은 한자말이고 '다짐'은 우리 말입니다. 그러나, 이 둘을 제대로 살피는 사람은 드뭅니다. 두 낱말은 서로 다르다고 여깁니다. 다르다면 하나는 한자로 지은 말이요 하나는 토박이말이라는 대목이지만, 이 대목에서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은 더없이 드뭅니다.


한자말을 써야 하느니 쓰지 말아야 하느니가 아니라, 두 낱말은 뿌리가 다름을 살피지 못합니다. 한자말을 쓰면 나쁘고 우리 말을 써야 옳다는 이야기가 아닌데, 여느 사람들은 자꾸만 금긋기에서 머물고 맙니다.

한자말 '약속'을 쓰고 싶으면 쓸 노릇이며, 이 낱말에 애틋한 느낌을 담으면서 살아간다면 이렇게 애틋한 느낌을 담으면서 주고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애틋한 느낌을 담아 '약속'을 이야기하더라도 이 낱말이 우리 말이 아님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한테는 우리 말 '다짐'이 있으나, 나로서는 '다짐'보다 '약속'이 좋아서 이 한자말을 쓰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 너와의 약속을
 │
 │→ 너와 한 약속을
 │→ 너와 맺은 약속을
 └ …

약속은 '합'니다. "나와 했던 약속 알고 있지?"처럼 이야기합니다. '약속하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나와의 약속 알고 있지?"처럼 우리 말투를 내팽개치고 맙니다. 한자말 '약속'이야 쓰고프면 얼마든지 쓸 노릇이지만, 이 낱말을 쓰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말 '다짐'을 안 쓰고 있음을 느끼지 않듯, 우리는 우리 낱말과 말투 모두 잊거나 잃고 있음을 느끼지 않습니다. 어쩌면, '약속'이라는 낱말을 왜 어떻게 어느 자리에 쓰는가를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이 낱말을 쓰더라도 알맞고 바르게 쓸 줄을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약속은 '맺'습니다. 하거나 맺은 다짐이나 약속은 어기거나 깨거나 틀어 버립니다. 이름씨 하나를 받는 움직씨가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살펴야 합니다. 낱말은 낱말대로 바르게 가누면서 말투는 말투대로 슬기롭게 여미어야 합니다.

 ┌ 너와 한 다짐을
 ├ 너와 맺은 다짐을
 ├ 너와 다짐한 말을
 ├ 너와 다짐했던 이야기를
 └ …

토씨 '-의' 또한 알맞게 쓸 자리에는 알맞게 쓰면 됩니다. 아예 안 써야 할 토씨가 아닙니다. 슬기롭게 넣으면 되고, 알차게 붙이면 됩니다. 엉뚱한 데에 붙이니 탈이 나고, 얄궂게 넣으니 말썽이 생깁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말다운 말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라 할 텐데, 어린이일 때를 비롯해 어른이 된 다음에도 글다운 글을 쓸 줄을 모릅니다. 말다운 말을 가르치거나 배우지 못하면서, 글다운 글을 물려주거나 이어받지 못합니다.

학교를 다니는 햇수가 늘지만, 학교에서 '지식을 다루거나 담는 말'을 어떻게 이루어 놓고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학교를 오래오래 다니면서도 내가 배우는 지식이 어떤 말그릇에 담겨 있는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옳게 말하고 옳게 생각하며 옳게 살기가 힘든 탓인지 모릅니다. 옳은 말을 찾고 옳은 넋을 가꾸며 옳은 삶을 꾸리기가 어려운 까닭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옳은 삶과 넋과 말을 놓을 수 없습니다. 옳은 길을 걷고 싶습니다. 옳은 밥을 먹고 옳은 사람을 만나며 옳은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고운 옆지기와 아이가 있기도 하지만, 저한테 한 번 주어진 제 목숨을 가장 싱그러우며 즐겁게 보내면서 마무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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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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