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이포.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가 사용했던 홍이포. 심양 고궁에 있다.
이정근
"이몽학의 반란 때에도 초기에는 마치 아이들 장난과 같았는데 종국에는 난리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번의 적도들은 포를 소지한 자가 태반인데 전주가 웅부(雄府)라고 하지만 어찌 격파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공주의 초군(哨軍)도 태반이 적도에게 붙었다 하는데 어찌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포를 가졌다고?"인조에게 포(砲)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병자년, 청나라의 침공으로 남한산성에 갇혀있을 때, 동망봉에서 쏘아대는 청나라군의 홍이포에 간담이 서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네, 몇 문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들이 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관군도 몇 문 보유하지 않은 포를 역도들이 가지고 있다면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게 강적(强賊)인가?놀란 인조 얼굴이 일그러졌다. 인조가 세자빈을 강적(姜賊)이라고 호칭할 때가 있었다. 그때보다도 더 공포에 떨고 있었다.
"기마병을 공주 직로에 파견하여 11개 참(站)의 상황을 신속히 보고할 수 있도록 하고 충주의 영장(營將)에게 영을 내려 기찰을 강화하게 했으면 합니다."동작진을 모진(母鎭)으로 하여 과천, 사근천, 수원, 진위, 소사, 아주, 성환, 직산, 천안, 덕평, 차령에 군사를 주둔시키자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기마병을 급히 출동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