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계겸재 정선이 그린 청풍계곡
이정근
경복궁 서쪽 궁장 끝에 우뚝 솟아있는 서십자각을 끼고 다시 한 번 우측으로 방향을 잡은 가마가 북쪽을 향하여 쉬지 않고 달렸다. 청계천 원류 백운동 천(泉)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인왕곡(谷) 청풍계(靑楓溪)가 만나는 지점에 가설된 돌다리를 건넜다. 신교(新橋)다. 다리를 건너니 동네사람들이 길을 메웠다.
"세상에 이런 변이 있을까?""동네 처자가 국모 될 거라고 경하했는데 이런 날벼락도 있단 말인가?""동기간 다 죽이고 이젠 세자빈 마마를 죽이려나 봐."드디어 가마가 솟을대문 앞에 멈췄다. 한 때는 대감댁보다도 세자빈댁으로 알려졌던 집이다. 김장생 문하에서 수학한 강석기는 사마시와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로 출사했다. 승지로 있던 강석기는 둘째 딸이 세자빈에 간택되어 동부승지와 우의정을 역임했지만 청빈한 삶을 살았다.
"마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버선발로 뛰어나온 어머니가 가마를 부여잡고 통곡했다. 세자빈이 가마에서 내렸다. 좌우를 휘둘러보았다. 집은 집이로되 동기간들과 뛰어놀던 옛날 그 옛집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심어놓은 오동나무가 마당 한 구석을 지키고 있을 뿐, 을씨년스럽게기 짝이 없었다.
"마른하늘에 뇌성도 유분수지 이것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씀입니까?"신씨가 세자빈의 손을 잡았다. 뜨거운 체온이 전해졌다.
"어머니 고정하십시오."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만 같았으나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신씨의 손이 세자빈의 얼굴로 향하려할 때였다.
"죄인에게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국법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찬물을 끼얹는 금부도사의 일갈이었다.
"이봐라. 자리를 대령하라."겁먹은 노복들이 돗자리를 준비해왔다. 마당에 돗자리가 깔렸다.
"죄인은 무릎을 꿇고 어명을 받으시오.""폐출 외에 또 다른 어명이 있단 말이오?"세자빈이 되물었다.
"그렇소."도사가 당당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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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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