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사당인 종묘.
김종성
'누구는 임금이었고 누구는 아니었으며, 누구는 중전이었고 누구는 아니었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다. 조선왕실의 사당인 종묘에 신주(神主, 위패)가 모셔진 남녀만이 임금과 중전으로 인정되고 있고 그런 기준에 따라 광해군과 장옥정 등은 임금이나 중전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관계와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다.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 인근에 있는 종묘에는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이라는 두 건물이 있다. 정전에는 19명의 임금과 30명의 왕후, 영녕전에는 16명의 임금과 18명의 왕후가 모셔져 있다. 그런데 영녕전에는 '마지막 황태자'로서 1970년에 사망한 영친왕(의민황태자) 부부의 위패도 모셔져 있으므로, 조선시대에 이곳에 모셔진 것은 15명의 임금과 17명의 왕후다. 따라서 정전과 영녕전을 합하면, 종묘에는 총 34명의 임금과 47명의 왕후가 모셔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종묘에 모셔진 34명의 남자 중에서 실제 임금은 25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9명은 죽은 뒤에 격상된 추존 임금이다. 추존 임금들은 종묘에 모셔져 있다는 이유로 조(祖)나 종(宗)의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실제로 임금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임금 역할을 했던 모든 사람이 이곳에 모셔져 있는 것도 아니다. 연산군·광해군의 신주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종묘에 모셔진 47명의 왕후 중에서 생전에 실제로 왕후 역할을 한 사람은 39명이다. 나머지 9명은 생전에는 단 한시도 왕후 역할을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왕후 역할을 했던 모든 사람이 이곳에 모셔져 있는 것도 아니다. 폐비 윤씨나 장옥정의 신주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종묘 안에서 이처럼 형식과 실제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 그것은 왕후·임금의 자격이 없는데도 그 자리에 오른 '이들'과 그런 자격이 있는데도 오르지 못한 '이들'을 각각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한 것이었을까?
이런 경우에 반드시 언급해야 할 명제가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종묘야말로 역사의 그 같은 측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이 아니었던 이들이 종묘에 모셔진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