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씨와 창영씨는 먹줄을 이용해 아내의 설계도면에 따라 정확한 치수로 집 공간구조를 그려나갔다.
송성영
"여기는 조금 늘리고 여기는 좀 줄여야 겠네요." "알아서 해요. 나는 잘 모르니께, 집 짓는데 편리한 대로 해요. 나는 밥벌이 하러 일주일 쯤 공주에 갔다올테니께."나는 목수들이 집 구조물을 짜는 것을 보다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공주로 향했습니다. 집 짓는 일보다도 당장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었으니까요. 공주 시골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가 집을 팔기 위해 내 놨다고 합니다.
"집 내 놨어.""이런 집을 누가 사겠어? 필요한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 살라구 그랴.""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왔다갔어.""벌써? 이걸 얼마에 팔려고?""오백만 원은 받아야 하지 않겠어?""안방에 빗물 새는 거 얘기했지 잉.""그 사람이 직접 봤어. 양동이 받쳐 놓은 거." 지난해 여름부터 우리는 집 안방에 내내 양동이를 받쳐 놓아야만 했습니다. 나름대로 지붕을 수리하겠다고 용을 써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보다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덜 나가는 사촌동생이 새는 지붕을 땜방하겠다고 가볍게 올라갔지만 오히려 빗물 구멍만 키웠습니다. 다 낡은 함석지붕이 바스러졌기 때문입니다. 당장 이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비가 올 때 마다 안방에 양동이를 받쳐 놓고 생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 뒤로 호남고속철도가 뚫릴 예정이라는 것두 말했지?""당연히 했지.""그 사람들 우리 앞으로 등기가 올려져 있지 않다는 것두 알고 있는 겨?""다 알고 있더라구. 이미 시청에 가서 다 떼 본 거 같은데."10여년을 살아온 공주 시골집은 법적으로는 우리 집이 아니었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빈농가를 구입할 당시 아무 생각 없이 집 주인을 믿고 등기조차 올리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사겠데?""아직은 모르지, 예전 집 주인하고 직접 계약하면 되니까 잘 하면 팔릴 거 같은데.""막상 집을 처분한다고 생각하니께 집 한티 미안하네. 인효엄마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서운하지?""아이들도 그렇구 나도 마찬가지지. 기분이 좀 이상해. 허전하고." 공주 시골집은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0여 년 전, 두세 살 무렵부터 흙 마당에 굴러가며 녀석들의 몸과 마음을 키워왔던 정든 집이었으니까요. 우리 부부는 본래 그 시골집을 사회운동가나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수행자들이 원하는 만큼씩 머물다 갈 수 있는 공동의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었습니다. 지붕만 고치면 안채는 멀쩡하니까요. 하지만 아내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집 짓는 자금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처분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사랑방 구둘장은 그대로 놔두고 허물어 버리고 새로 지을 려나 봐.""알아서 하겠지."그날 밤 나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내내 작업실로 쓰고 있던 사랑방에서 밥벌이 방송 원고 작업을 했습니다. 천장에서 쥐새끼들이 운동회를 벌이곤 하는 사랑방은 이미 수 년 전 부터 한쪽 지붕이 내려 앉아 있었습니다. 대전에서 생활하시는 엄니는 비나 눈이 오면 전화를 걸어 지붕이 내려앉을까봐 사랑방에서 잠자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습니다.
방송 원고를 마감하고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20만 원짜리 중고 노트북 한 대를 장만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우리집 개 곰순이를 데리고 고흥 집 짓는 터로 향하면서 노트북 구입을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집 짓는 작업을 하는 기간 동안 꼬박 꼬박 일지를 쓰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얼마든지 수첩 기록이 가능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나 혼자만의 편리에 의한 불필요한 소비였습니다. 오래된 컴퓨터이긴 하지만 내겐 이미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그 컴퓨터를 통해 동영상을 보면서 원고를 쓰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소비에 무감각해진 것은 집 짓는 기간 동안 거금의 공사자금을 지출하면서 생긴듯 했습니다. 일이 십만원은 물론이고 백만 원 이백만원조차 종이 쪼가리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돈이야 본래 불붙이면 잘 타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지만 무감각해져 가는 소비가 문제였습니다. 불필요한 소비에 무감각해 가고 있다는 것은 자본의 깊은 수렁에 빠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의 수렁에 빠지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고통이 뒤따르게 될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