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101) 몸마음

[우리 말에 마음쓰기 896] '이름값'과 '명성-명예'

등록 2010.04.10 09:34수정 2010.04.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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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몸마음

..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즐겨 먹지는 않지만 먹고 있고, 이명박이 정권에서 내려와야 술을 마시겠다고 했는데 마음이 많이 아플 때는 술도 입에 댔다. 몸 마음을 맑고 밝게 해서 자연을 더럽히고 아이들 목숨줄을 조이는 사람들에 맞서 싸우려 했는데 ..  <은종복-풀무질, 세상을 벼리다>(이후,2010) 4∼5쪽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나 "술을 마시겠다고 했는데"라는 글월을 가만히 살펴보면 '결심(決心)'이라는 한자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이처럼 "-겠다고 하다"라는 말투로 어떤 다짐이나 마음가짐을 나타내 왔습니다.

'즐겨 먹다'는 한 낱말이 아니지만 퍽 널리 쓰는 말투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즐겨-'를 앞가지로 삼지 않으나, 우리들이 널리 쓰는 말투를 돌아본다면 '즐겨먹다'나 '즐겨쓰다'나 '즐겨찾다'나 '즐겨읽다' 같은 낱말을 하나둘 새롭게 지을 수 있습니다.

"자연을 더럽히고"를 살피며 "자연을 훼손(毁損)하고"를 걸러낼 틀을 엿봅니다. "아이들 목숨줄을 조이는" 같은 말투가 참 괜찮구나 싶은 한편, "맞서 싸우려"라는 말투를 보면서 '대항(對抗)하다'롤 다듬는 틀을 새삼스레 배웁니다.

 ┌ 몸마음 : 몸과 마음
 └ 심신(心身) : 마음과 몸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심신 단련 / 심신이 피곤하다 / 심신이 다 상쾌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아주 마땅한 노릇일 텐데 '몸마음'이나 '마음몸'이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심신'이라는 한자말만 국어사전에 실립니다. 더욱이 '심신'을 뒤집은 '신심(心身)'마저 국어사전 올림말로 버젓이 실리는데,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삶과 모습을 가리키는 '몸마음'이나 '마음몸'은 한 낱말로 삼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말로 일컫자면 문화 제국주의나 문화 사대주의라 할 만한 노릇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사랑하지 않는 노릇이요, 우리 터전에서 우리 얼과 넋을 빛내며 우리 손으로 우리 땀을 흘리며 일구고자 하는 매무새가 없는 노릇입니다.

 ┌ 몸마음 다스리기 / 몸마음 갈고닦기
 ├ 몸마음이 고단하다 / 몸과 마음이 고달프다
 └ 몸마음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 몸과 마음이 다 후련하다


몸을 다스리듯 마음을 다스리고, 말을 다스리듯 글을 다스려야 합니다. 몸을 갈고닦듯 마음을 갈고닦고, 말을 갈고닦듯 글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이 나라에서 한국말을 쓰는 우리들 스스로 우리 말을 빛내야 합니다. 줏대를 키울 우리들이요, 사랑을 꽃피울 우리들입니다.

100층이 넘는 건물을 세우거나 국민소득이 몇 만 달러에 이른다 하더라도 우리 줏대가 없고 고운 사랑이 없다면 우리 삶터에는 메마르고 쓸쓸한 기운만 넘칩니다. 돈이 있어도 사랑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고, 힘이 있어도 넉넉하지 않은 사람은 가여우며, 이름이 있어도 따뜻하지 않은 사람은 안쓰럽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제 삶과 넋과 말이 고르게 사랑스럽고 넉넉하며 따뜻할 수 있도록 몸을 바치고 마음을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ㄴ. 이름값

.. 그런 기업들이 돈을 내는 것은 이름값을 높여서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생각도 들어 있지요 ..  <은종복-풀무질, 세상을 벼리다>(이후,2010) 53쪽

"돈을 내는 것은"은 "돈을 내는 까닭은"으로 다듬습니다. "돈을 왜 내느냐 하면"이나 "돈을 내는 까닭을 살피면"이나 "돈을 내는 속내를 보면"으로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 이름값 : 명성이 높은 만큼 그에 걸맞게 하는 행동
 │   - 이름값을 못하다 / 이름값을 하다
 ├ 명성(名聲) : 세상에 널리 퍼져 평판 높은 이름
 │   - 명성을 날리다 / 명성이 높다 / 그는 청빈함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 명예(名譽)
     (1)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
      - 명예를 높이다 / 명예를 더럽히다 / 명예를 실추시키다
     (2) (관직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명사 앞에 쓰여) 어떤 사람의 공로나 권위를
         높이 기리어 특별히 수여하는 칭호
      - 명예 총재 / 명예 회원 / 명예 회장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름값'이라는 낱말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말풀이는 엉터리로 되어 있습니다. "명성이 높은 만큼 그에 걸맞게 하는 행동"이라는 말풀이를 살피면, '이름값' 풀이에서 '명성'이라는 한자말을 들먹이는데, '명성'이란 "높이 섬기는 이름"을 가리킵니다. 이럴 때에는 "명성이 높은"처럼 쓸 수 없어요. "명성이 있는"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낱말뜻에 '높다'라는 뜻과 느낌이 담겨 있기에 다시 "명성이 높은"이라 한다면 겹말이 됩니다. 더구나 국어사전 보기글에 "명성이 높다"라는 글월을 싣는데, 이 또한 잘못입니다. 사람들은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말풀이를 읽고 보기글을 살피며 외려 잘못된 말투를 익히거나 배웁니다. 엉터리 말투에 젖어들거나 물듭니다.

이름값이란 이름에 걸맞은 값입니다. 이름에 걸맞게 보여주는 구실이나 노릇입니다. 이름에 걸맞는 모습이나 매무새입니다.

이와 같은 낱말 씀씀이를 조금 더 헤아리면 '명성'이나 '명예' 같은 낱말을 따로 안 쓰면서 우리 느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이름'이라는 낱말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름값'이 있습니다.

 ┌ 명성을 날리다 → 이름을 날리다 / 이름값을 날리다
 ├ 명성이 높다 → 이름이 높다 / 이름자리가 높다
 ├ 청빈함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 가난하게 맑은 삶으로 이름이 드높다
 ├ 명예를 높이다 → 이름을 높이다 / 이름값을 높이다 / 이름자리를 높이다
 └ 명예를 실추시키다 → 이름을 떨어뜨리다 / 이름값을 떨어뜨리다

글흐름에 따라 '이름자리'라 해 볼 수 있습니다. 마음밭과 생각밭이라 하듯 '이름밭'이라 할 수 있고, 마음무늬와 생각무늬라 하듯 '이름무늬'라 할 수 있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서 '이름넋'이나 '이름얼'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을 수 있습니다. 뜻을 살리면 되고, 느낌을 북돋우면 되며, 생각을 살찌우면 됩니다.

사람은 사람값을 할 노릇이라 하고, 저마다 얼굴값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물건에는 물건값이 있으며, 사람마다 삶을 꾸리는 삶값이 있습니다. 꼭 돈으로만 헤아리는 돈값은 아닙니다. 돈어림을 넘거나 아우르는 값어치를 들여다보는 얼거리입니다.

말마디마다 말값을 살필 수 있고, 글줄마다 글값을 따질 수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이야기값이 있고, 마음에는 마음값이 있겠지요. 거룩하거나 훌륭한 마음일 때에는 마음값이 높거나 깊다 할 만합니다. 얄궂거나 추레한 마음일 때에는 마음값이 얕거나 낮다 할 만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이으면 생각을 놓고도 생각값을 톺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놓고 얼마나 일을 할 만한 값어치가 있느냐를 생각하며 일값을 곱씹을 수 있습니다. 책을 사면서 치르는 책값이 있는 한편, 책 하나에 깃든 값어치를 돌아보는 책값어치나 책값이 있을 수 있어요. 쓸모를 둘러보며 값을 매기고, 쓰임새를 가누며 값을 붙입니다.

옹글게 꾸리려는 삶으로 내 하루하루를 추스르면서 내 넋이 알찬 넋으로 자리매기도록 힘을 쓰고, 내 넋을 하루하루 알찬 넋으로 자리매기는 동안 시나브로 내 말을 알찬 말로 뿌리내릴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삶값을 가꾸며 넋값을 일구고, 넋값을 일구며 말값을 다스립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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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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