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유혹에 빠지는 재미, 어머니는 슬프게도 느끼지 못하신다
모래언덕은 예전에 콘크리트로 돌을 연결하는 방식의 축대를 쌓았었다. 그것이 삼 년도 채 안 되어 죄다 무너져 내렸다. 밤마다 모래를 실어 오던 바람이 축대를 쌓은 뒤부터는 거꾸로 모래를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그 자리를 다듬어서 거대한 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바위이라고나 해야 할 것들로 새로운 축대를 쌓았다. 그러자 바람은 무슨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는지 가져갔던 모래를 도로 가져다가 쌓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미터 높이의 축대는 모래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인간과 바람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가만히 앉아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라든가 <바람의 전설> 같은 것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느 순간 나 자신이 바람에 납치되어 바다 위를 훨훨 횡단하는 상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아무 데나 발랑 드러누워 하늘을 보면 된다. 하늘에는 구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람소리를 배경음악으로 크고 작은 날것들이 마치 꿈을 가져봐, 나를 따라서 해봐, 하는 듯이 유혹을 하는데 그 유혹에 빠져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렇게도 쏠쏠한 재미를, 그러나 우리 어머니께서는 유감스럽게도, 슬프게도 잘 느끼지를 못하신다. 오랜만에 햇살도 봄날의 그것처럼 '따땃하고', 바람도 날카롭지 않아서 빵 두엇에 음료수 두엇 챙겨서 소풍을 가자 하니 마땅찮아 하면서도 끝내 거절까지는 안 하고 따라나선 어머니, 바닷가 모래밭에 왔는데도 바다인 줄을 모르고 어디 무슨 들판에라도 온 것으로 생각하신다.
"어매, 어디서 삥아리 소리 나네."
"삥아리 아니여, 갈매기 소리여. 도요새도 있고."
"갈매기? 여그가 어디간디."
"아따 참말로 엄마도 참, 바다잖여. 해수욕장. 저기 저것이 바닷물이고."
"해수욕장? 어디 해수욕장?"
"동호, 엄마도 옛날에 많이 왔었잖여. 모래찜질 하러도 오고."
"오오, 모래찜질."
그제야 어머니는 상황을 조금 알아차리신 것 같다.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끄덕거리다가 눈을 깜빡이다가 뭔가를 정리해보는가 싶더니 문득 피식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미소를 짓는다.
"뭐여, 큰애기라고? 엄마를? 누가? 언제?"
"아따 참말로 그 써글놈의 인사들이."
"응? 뭔 소리여? 내가 써글놈이라고?"
"아니, 그것이 아니고 저기 머시냐 거."
"머시냐가 머시다요, 거시기?"
"아따, 아니랑게는."
어머니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푸훗,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리고는 다시 벙긋벙긋 미소를 짓고, 혼잣말을 하고, 생각할수록 웃긴다는 듯 하늘을 향해 웃음을 감추는 자세를 취하다가 다시 혼잣말을 하시는데 "시상에 눈도 이상하지, 나더러 큰애기라고, 그 썩을놈의 인사들이" 하는 그 한 마디가 내 귀에 꽂히듯이 잡힌다.
"뭐여, 큰애기라고? 엄마를? 누가? 언제?"
"아이 몰러."
어머니는 사뭇 얼굴까지 붉혀가며 도리질을 하신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하신다. 야아 이거 뭔가 크나큰 비밀이 있구나 싶어지면서 나는 애가 타는데, 어머니의 기억은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아득한 아지랑이 같기만 하다. 그것은 분명 당신의 어떤 과거사를 숨기고 싶어서라기보다 연결이 잘 안 되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긴장이 된다. 별 생각 없이 나선 소풍길에서 어머니의 기억 하나가 재생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기쁨이 무엇이랴.
그리하여 나는 퍼즐 맞추기를 하듯이, 수사관이 심문을 하듯이 이런 말 저런 말 온갖 말들을 동원해서 그야말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결과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야기라기보다 한 단어, 한 음절, 한 마디 정도에서 뚝뚝 끊어지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따로따로이면서도 같은 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접속사나 부사, 조사만 적절하게 붙여주면 자동적으로 이야기가 완성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해인가 젊은 시절에 어머니는 마을 아줌마들과 더불어 해수욕장을 찾았던 모양이었다. 버스도 없던 시절이라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고 단장을 하고 해서 사십 리도 넘는 길을 걸었다. 남편들에게 함께 가자고 했지만 동네 남편들이 하나같이 "여편네들이 무슨"하는 식이었던 까닭에 아줌마들만 단체로 모래찜질을 나섰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남자들이 떼로 몰려와서 큰애기니 뭐니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줌마들은 불안에 떨며 남편들을 원망하고 성토하는 한편 달라붙는 사내들을 따돌리느라 모래찜질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한편, 안 간다고 버티던 남편들은 내심 불안했던지 그들 또한 단체로 길을 나섰다. 해수욕장에 도착한 뒤에는 바로 마누라들을 찾아 나선 게 아니라 술집 매상이나 올려주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어지간히 취한 뒤에서야 남편들은 모래밭으로 내려왔고, 그리고 '멀쩡한 아줌마들을 처녀'라고 우기며 달라붙는 사내들과 마주쳤다.
남자들이 서로 치고 받고 코피를 쏟는 동안 아줌마들은 한곳에 모여 구경이나 했을까? 아니었다. 누가 먼저 신발짝을 들고 나섰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각자 남편의 뒤에 달라붙어 '불한당'들을 함께 물리쳤다는, 바로 이 장면에 대한 기억이 어머니를 그토록 혼자서 실실 미소 짓게 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만약에 어머니가 치매전문 요양원에 계셨더라면, 그때도 어머니는 과연 이런 알뜰한 과거를 기억해낼 수 있었을까. 요양원에서 아무리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핀다 해도 이것만은 아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터이다. 달아난 기억을 온전히 불러들이기는 어렵겠지만, 그나마 과거를 공유할 수 있는 가족이 아니고서야 무엇을 어찌 알아서 그때그때 적절한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으랴.
어쨌든 나로서는 아주 신기한, 새로운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다니. 아하하, 별 뜻 없는 웃음이 자꾸 나오는데 이걸 언제 어떤 방식으로 아우들에게 들려주어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그냥 커다란 횡재라도 한 것 같다.
2010.01.27 16:25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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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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