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네 비닐하우스서너 평 되는 비닐하우스에 고추를 말렸습니다. 김장하실 때 쓰겠지요.
주재일
할아버지는 부지런하고 손재주도 뛰어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동작을 눈여겨보신 분은 알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른손을 온전히 쓰지 못하십니다. 한국전쟁, 그러니까 6・25때 오른팔에 총을 네 방이나 맞았는데, 그 덕에 팔목을 들어올리는 힘줄은 끝내 고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장애2등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오른손을 들었다가 놓으십니다. 손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떨어집니다. 어떻게 이런 손으로 밭을 일구고 이웃을 도울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 말씀이 "마음이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
할아버지는 30여 년 전 전남 영광에서 우리 마을로 오셨습니다. 당시 건축 일을 하셨답니다. 할아버지가 사는 빌라는 물론, 516번지에 있는 해청빌라와 미진빌라 터도 닦았다 하십니다. 그렇지만 재력이 약해 공사 중간에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진한 아쉬움을 달래며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할아버지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살에도 할아버지가 걸어오신 인생길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주름살의 골만큼 후덕한 할아버지 인심도 깊지요.
할아버지에게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텃밭을 하면서 기른 작물들을 전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전시관을 세우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작물의 씨앗을 모두 모아서 마을 아이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모으는 것은 자신 있다고 하십니다. 문제는 땅이지요.
가르멜수녀원에서 북한산으로 올라가는 쪽 작은숲속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십니다. 할아버지가 말한 땅에는 자연학습장이라는 팻말을 달았지만 실제로는 몇몇 사람들이 텃밭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곳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쉬고 배우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할아버지 소원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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