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집과 골목집을 잇는 전깃줄에 매달린 수세미.
최종규
밝아오는 아침햇살을 등에 지며 사진으로 담기도 하고, 기웃기웃 지는 저녁햇살을 등에 지며 사진으로 담기도 합니다.
지난 한가위 때에는 잔뜩 밀린 일을 하느라 우리 부모님 댁에는 찾아가지 못하고 옆지기 부모님 댁에는 꼭 하루만 다녀왔습니다. 내내 집에서 홀로 일을 하다가 골치가 아프던 저녁나절, 사진기 하나 달랑 들고 골목마실을 했습니다. 저로서는 일곱 번째로 알게 된 나무전봇대가 있는 송현동 골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저녁바람을 쐬고 싶었습니다.
요사이 '동인천 북광장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시장과 양키시장과 순대골목 모두 철거하는 일이 하나둘 이루어지고 있는데, 볼꼴사납게 헐린 건물 옆으로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버젓이 남아 있습니다. 나무전봇대는 퍽 우람한 모습을 뽐내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다른 나무전봇대 하나는 밑둥이 잘린 채 우람한 녀석한테 기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봇대 앞으로 아직 살아남아 있는 골목집 대문에는 "사람 살고 있씀니다"라는 손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손글씨 위에 주소 또한 손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이웃집들이 헐리면서 담벼락에 붙여놓고 있던 주소패가 모두 떨어져 나갔으니 이렇게라도 주소며 이름이며 적어 놓고 '사람 사는 둘레에서 들볶지 마시오!' 하고 마지막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