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교회의 예배 모습90년 민주화혁명 이후 한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의 공격적인 선교로 많은 몽골인들이 교회를 찾고 있다.
백찬홍
공산당 시절 탄압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몽골불교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6박7일간 몽골공화국을 방문해 몽골불교현황과 기독교단체의 선교활동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일반적으로 몽골은 불교의 나라로 알려졌다. 몽골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흉노족이 몽골초원을 지배했던 기원전 1세기부터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부정하지만 기원전 3세기부터 비단길과 초원길을 따라 전해진 불교는 중국이 서역이라고 불렀던 중앙아시아로 전해졌고 이들 지역과 활발하게 교역했던 흉노족 일부도 불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서몽골 일대에서 발견된 당시 불교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흉노, 선비, 돌궐 등 몽골초원 지배자들의 흥망으로 명맥이 끊겼던 불교가 국교화된 것은 칭기즈칸의 손자로 13세기말 원제국을 세운 쿠빌라이 때부터였다.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에 멸망되기 전까지 원제국 내에는 4만여 개가 넘는 사찰과 20만 명이 넘는 승려가 활동할 정도로 불교 영향력은 막강했고 그 중심에는 티베트 불교가 있었다.
원나라 승려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은 파스파였다. 라마교 승려였던 그는 제국의 불교계를 지배했고 티베트문자를 기본으로 현재까지 공식문자로 내려오는 파스파 문자를 만들기도 했다. 원제국 내에서 숭상된 불교는 지나친 기복신앙과 권력화, 성문란, 도덕적 타락으로 국력을 갉아먹는 역할을 했다. 14세기말 원이 멸망하고 초원으로 물러간 몽골족은 불교로 인해 제국이 멸망했다는 이유로 이전 신앙인 샤머니즘으로 돌아갔다.
몽골지역에서 불교가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 몽골초원을 지배한 알탄 칸이 티베트 접경인 칭하이성 일대를 공격하면서부터였다. 티베트 고승 소남 갸초를 만난 알탄 칸은 그의 법력에 감탄해 달라이라마(지혜의 바다)라는 칭호를 선사했고 소남 갸초 역시 알탄칸을 칭기즈칸 가의 후계자로서 권위를 부여했다. 알탄 칸의 비호 아래 티베트 불교는 전 몽골로 확산되었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지배 하에서도 불교는 더욱 확산되었다. 17세기 중반에는 전 몽골의 수령들이 모여 모든 귀족가문에서 아들 하나는 라마승으로 출가시키기로 합의했다.
청조 역시 몽골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라마승들을 지원했고 불교의 정치·경제적인 영향력이 커지자 많은 몽골인이 승려가 됨으로서 19세기말에는 성인남자의 절반 이상이 승려가 될 정도였다. 한때 초원을 지배했던 몽골 남성들이 승려가 되면서 몽골인의 상무정신과 기상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지금의 몽골지역에만 4천 개 이상의 사찰이 있었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붕괴하자 불교지도자인 복드 칸이 몽골 최고통수권자이자 법왕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1924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몽골불교는 거의 뿌리가 뽑힐 정도로 암흑기를 맞이했다. 소련 영향력 아래 있었던 몽골공산당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간주하고 불교는 물론 전통신앙인 샤머니즘도 철저히 탄압했다. 1930년대 스탈린시대에는 약 1만 7000명에 달하는 승려들이 처형당하거나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거의 모든 사찰이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