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헌책방이나 옛책방을 지켜 온 분들한테 꾸준히 찾아가며 책을 사읽고 이야기도 함께 나누면서 '우리 책방 발자취'를 찾아보려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 나라에 문헌정보학과 대학생만 해도 수두룩하지만.
최종규
더위를 식히려고 부채질을 하며 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이야기책 《고서점의 문화사》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경찰이 벌인 '불온도서 빼앗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일 '불온도서 빼앗기'는 해방 뒤에도 있었고, 이승만 때와 박정희 때와 전두환 때와 노태우 때와 김영삼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 때에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이명박 때에도 되풀이됩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압니다. 우리 나라에 '국가보안법'이 일본제국주의자 총칼로 들어선 다음부터 어느 한 해이고 보안경찰들이 '헌책방마실을 하며 불온도서 찾기'를 안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판이 끊어져 버린 책이라 할지라도 이삿짐에서든 도서관에서 내다버린 책에서든 '혁명과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좀더 거세게 외치는 줄거리' 담긴 책은 헌책방에 흘러들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때이든 독재정권 때이든, 인문사회과학책방 일꾼뿐 아니라 헌책방 일꾼들은 이러한 책들한테 '제 임자 찾아 주기'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헌책방 일꾼들은 이런 책에 어떤 줄거리가 담겼는지 모른다 할지라도, '책을 불사르'거나 '책을 찢어버리'는 끔찍한 우격다짐만큼 잘못된 생각과 몸짓은 없다고 느낍니다. 왼쪽이라고 더 낫지 않으나 오른쪽이라고 덜 낫지 않으며, 왼쪽이라고 나쁜놈이 아닌 가운데 오른쪽이라고 좋은놈이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이고, 책은 모두 같은 책입니다.
언제나 '책을 받아먹는 사람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고자 한다면, 아무리 엇나가는 줄거리 담긴 책을 읽더라도 바르게 꾸리는 삶을 놓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뚤어지게 살고자 한다면, 아무리 올바른 줄거리 담긴 책을 읽더라도 비뚤어지고야 맙니다. 우리 나라에서 책이 책답게 뿌리내리며 이어오기 힘들고 헌책방이 헌책방답게 자리잡으며 대물림하기 힘든 탓은, 아무래도 우리 스스로 옳은 삶을 붙잡거나 즐거운 삶을 함께 나누려 하는 뜻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2) 몹시 아쉬운 책 《고서점의 문화사》2007년에 이중연 님이 펴낸 《고서점의 문화사》는 책이름 그대로 '고서점'이라는 곳이 한국땅에서 어떤 문화 노릇을 하면서 어떠한 발자취를 남겼는가를 톺아보려고 하는 책입니다. 이중연 님은 《책, 사슬에서 풀리다(해방기 책의 문화사)》(2005)라든지, 《책의 운명(조선∼일제강점기 금서의 사회사상사)》(2001) 같은 책을 꾸준히 펴내면서, 우리네 '책 문화 역사'를 밝히고자 하는 분입니다. 이참에 낸, 아니 이태 앞서 낸 《고서점의 문화사》는 우리 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책방' 발자취를 다룬 책입니다. 더욱이, 책방 가운데에서도 여느 새책방이 아닌 '헌책방'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올 무렵, 온갖 매체에서 이 책을 여러모로 칭찬하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 또한 책이 갓 나왔을 때에 장만해 놓았습니다. 다만,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지루하다고 느껴 덮어 놓기 일쑤였고, 덮어 놓았다가도 '고서점'을 다루는 책이라서 섣불리 집어치우거나 책꽂이에 쑤셔박지 못한 채 이태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