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컨크릿(주) 대표(좌) 및 사장. 최종 선정된 건축회사의 대표와 사장입니다.
차동자
6월 한 달 간, 선정된 업체와 최종 계약을 진행하고 사업 착수에 돌입하기 위해 선수금을 주는 단계. 업체로부터 각종 보증서를 은행을 통해 받아야 사업 착수를 위한 선수금 지급이 이루어진다. 교육부 장관의 사업 잠정중단 의사를 아프라니 국장으로부터 들은 것은 바로 이 때였으니 그 때의 자세한 정황은 이러했다.
서명 하나를 남겨두고, 거의 한 달 간 아무런 이유 없이 보증서 발부를 차일피일 미루는 은행을 찾아갔다. 참 참고로, 가나에서는 절대로 고객이 왕이 아니다. 직원이 왕이다. 고객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고 그저 의자에 앉아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게 전부인 이해할 수 없는 가나의 은행. 나는 은행 주요 간부를 찾아가서 더 이상 신뢰를 지키지 못하면, 은행 때문에 사업 수행을 결국 하지 못하겠다고 보고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러다간 가나의 주요 관공서와 은행 직원들이 다 내 원수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마냥 웃으면서 기다리다 보면, 정말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지난 해 2월, 처음 가나를 방문하고 느꼈던 가나에 대한 몽환적인 동경, 느림에 대한 찬양을 넘어선 숭배는 이제 나에게 거의 남아있지 않다. 느림을 지나쳐 무책임함에 이르는 경우를 너무 자주 경험하면서, 나는 이상과 환상에서 내려와 지극히 현실적인 느림 반대론자가 되어가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들이 전혀 새로운 가치 체계가 작동하는 완벽한 공동체를 만들지 않는 이상, 지금 여기에서의 그 느림에 대한 지지는 당분간 철회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틀 째 찾아간 은행, 불과 어제 몇 시간 전에 했던 약속에 대해 언제 그랬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간부를 뒤로 하고 은행장에게 찾아갔다. 은행장은 그 진실 여부를 알 수 없으나, 일이 이렇게까지 지연되고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며 한달여간 미루어두었던 서명을 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시간은 이미 은행과 대사관 업무가 모두 종료된 시점.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이다. 마음 편하게, 기쁜 마음으로 서로 친절한 자세로 신뢰하면서 하나씩 일을 약속한대로 풀어나가면 서로 간에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동네방네 난리를 치고 나서야 일이 해결되고, 한 달 묶인 일이 한 시간 만에 해결되는 것이 나를 너무 서글프게 한다. 이런 일을 겪은 것이 벌써 여러 번이다.
이틀을 속이 타들어가게 하고, 안면 몰수하고 업무가 종료된 대사관을 찾아가서 보증서와 관련 공문서를 제출했다.
어찌되었든 또 일 하나가 해결되었구나 안도하는 순간, 교육부에서 급히 면담을 원한다며 연락이 온 것이다. 내가 가나에서 가장 신뢰하는 교육부 아프라니 행정국장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이야기는 아직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한 나를 또 다시 코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