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맹자야 맹자야》를 헤아려 봅니다. 이 만화책은 지난날 그렇게 크게 사랑을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우리한테 즐거움을 선사하던 '명랑만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날은 명랑만화가 하나도 없다 할 만한데, 왜 없을까를 곰곰이 따져 보면, 명랑만화 주인공이 될 만한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날 명랑만화를 그리던 때에는 아이들이면 누구나 골목이나 고샅에서 놀았습니다. 이와 같은 명랑만화는 '아이들이 또래 동무나 이웃 어른하고 골목과 고샅 어디에서나 부대끼는 이야기'를 만화감으로 삼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아이와 아이끼리, 아이와 어른끼리 부대끼는 삶이 사라진 판에는 더는 명랑만화가 나올 수 없는 셈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고 보면, '맑고 밝게만' 그리도록 해서 명랑만화라고 이야기하지만, 하나하나 살피면 생활만화입니다. 누구나 으레 그렇거니 저렇거니 꾸리는 여느 삶을, 수수한 삶을, 투박한 삶을, 언제 어디에서나 겪거나 치르는 삶을 담은 만화이거든요. 잘나면 잘난 대로 아옹다옹하고, 못나면 못난 대로 서로 툭탁툭탁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다가도 어깨동무하고 손잡고 웃고 우는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만화입니다. 바로 생활만화입니다.
《장혜명-나의 삼천리》(문학예술출판사,2005)라는 시모음 하나를 집습니다. 북녘에서 나온 시모음입니다. '6ㆍ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기념'으로 나왔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금강산 관광을 하면 그곳에서 기념품으로 팔던 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줄거리는 그리 눈여겨볼 만하지 않다고 느끼는데, 앞으로 스무 해나 쉰 해쯤 더 묵는다면 그때에는 남다르게 느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처음으로 민속을 찍다(송석하 소장 민속학 선구자들의 사진자료집)》(국립민속박물관,2007)라는 사진책을 봅니다. 시디를 한 장 곁들인 사진책입니다. 나라에서 이런 소담스러운 자료를 펴내기도 하는구나 싶어 놀라운 한편, 진작부터 이런 자료를 나라돈으로 펴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문화를 살피고 갈고닦고 갈무리하는 일이야말로, 소장학자가 쌈지돈 그러모아 할 일이 아니라, 나라에서 나라돈으로 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고속도로 하나 덜 닦아도 되고, 아스팔트 깔기를 몇 킬로미터 못해도 됩니다. 이런 책 몇 권쯤 더 만들어야 나라살림이 넉넉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그러니까, 2차선 아스팔트길을 1미터 안 닦으면 이런 책 하나 엮을 수 있습니다. 2차선 아스팔트길 1킬로미터 안 닦으면 이런 책을 1000권 엮을 수 있습니다. 아스팔트길 10킬로미터를 안 닦으면, 문화뿐 아니라 과학 교육 역사 사회 정치 …… 할 것 없이 갈래마다 천 가지 책을 훌륭히 엮어낼 수 있는 셈입니다. 시, 군, 구, 면, 동에서 보도블럭 까엎는 일을 안 하고 그 돈을 그 동네 문화와 역사 살피는 데에 쓰면, 우리네 문화와 역사는 몇 해 지나지 않아 차곡차곡 갈무리되어 누구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자료를 넉넉히 갖출 수 있습니다.
.. 사진을 소장하고 있던 송석하는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이 그 많은 사진들을 모두 직접 찍었다고 말한 바 없다. 송석하는 단지 자기가 직접 촬영한 사진 503장을 포함한 1716장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송석하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그 많은 사진을 학술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사진제목, 촬영일자, 촬영지역, 사진번호, 원판 등의 항목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 자신만의 사진정리 카드에 붙여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 우리가 그동안 송석하 소장 사진들에 대해서 왜 그렇게 깊은 오해를 하게 되었는지 한 번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송석하 소장 사진 1761장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인 1097장의 사진은 일본인 민속학자 아키바 다카시와 아카마쓰 지조의 사진임을 알 수 있다 … 하지만 그들이 식민지 지배세력의 불순무도한 목적을 가지고 조선의 민속문화를 연구했거나 아니면 순수하게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조선의 민속문화를 연구했는지 현재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키바 다카시와 아카마쓰 지조, 그리고 송석하 등은 조선의 민속문화를 처음으로 전문 민속학자의 입장에서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 연구한 민속학의 선구자들이라는 점이다 .. (45, 60, 65쪽)
사진책 《윤주영-장날》(현암사,2001)을 고릅니다. 집에 없지 않나 싶어 장만했는데, 집에 와서 책꽂이를 돌아보니 이 책이 덩그러니 꽂혀 있습니다. 아이구머니나. 진작에 장만해 놓고 있던 책을 잊고는 다시 사다니. 이 사진책 값은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 하나 사느라 다른 책 몇 권을 못 사고 말았는데.
그러나, 윤주영 님 사진책 가운데 《장날》은 두 권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비록, 시골 저잣거리 모습을 좀더 남다르게, 그러니까 '사진쟁이 윤주영다운 눈길만으로' 담아내지 못하기는 했지만, 또 너무 뻔하고 틀에 박힌 모습으로 저잣거리 모습을 담아냈다 할 테지만, 할아버지 사진쟁이인 윤주영 님이기 때문에 다른 사진쟁이가 담기 어려운 모습을 알뜰히 담을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이런 사진 매무새는 머리말에 잘 나와 있습니다.
.. 장터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들은 바로 우리 나라의 할머니들이다. 이 할머니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신이 농사지은 도라지나 곶감이나 잡곡 등을 들고 와서 파는 것이 아니다. 이미 너덧 명의 자식을 낳아 대학까지 졸업시켜서 그들이 보내 주는 돈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 (머리글/윤주영)
머리글 앞에는 추천글이 달려 있습니다. 대학교수님이 적은 추천글은 시골 장날을 '시골 장날'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 이 사진첩은 장날 장터에서 볼 수 있는 우리들의 옛 삶의 정취를 담고 있다. 그 주인공들은 우리를 낳아 준 어머니, 우리의 과거를 살아왔던 할머니, 할아버지다. 장날이지만 그분들의 표정은 단지 시골의 일상이며 생활의 연장일 뿐이다 .. (추천글/정승모)
어쩌면, 사진책 《장날》은 '옛 정취가 더 사라져 버리기 앞서 얼른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주영 님이나 출판사에서는 이런 데에 눈길을 맞추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진책 《장날》에 담긴 모습은 이 사진책이 나온 2001년뿐 아니라 2009년에도 볼 수 있습니다. 2020년에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30년이라고 크게 달라지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아직도 이 《장날》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다름아닌 삶이기 때문이지요. 시골 저잣거리 할매이든 아지매이든, 당신들한테는 삶입니다. 재래시장은 구지레하게 여겨 얼른 치워 없애고 마트와 아파트를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무원과 개발업자 힘이 훨씬 세기는 하여도, 도시나 시골이나 저잣거리 할매와 아지매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함지박을 이고 지고 수레에 끌고 밀고 하면서 장사판을 벌입니다. 그예 삶이니까요.
사진책 《장날》은 추억이 아닙니다. 정취도 아닙니다. 대학교수님 추천글을 살피면 "시골의 일상이며 생활의 연장일 뿐"이라고 덧달지만, 글시늉으로 가리키는 삶이 아니라,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꾸준히 이어가는 삶입니다. 낮은자리에서 조용히 살림을 꾸리는 분들 이야기입니다. 가난하건 가난하지 않건 수수하게 살림을 다스리는 분들 어우러짐입니다. 만남이요 사귐입니다. 웃음이요 눈물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제가 찾아간 헌책방 〈정은서점〉 마흔 해 발자취란 '추억'도 '정취'도 아닌 삶입니다. '대단한 장인정신'이 아닌 삶입니다. 하루하루 삶이었고, 앞으로도 삶입니다.
헌책방 〈정은서점〉 문간을 꽃으로 꾸미고, 책꽂이 벽에 '좋은 글월'을 쪽지에 적어 붙인 따님 손길도 삶입니다.
그리고, 헌책방마실을 한다며, 이 마실을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은 제 발걸음도, 또 이 발걸음이 열 해 스무 해를 곧게 이으며 앞으로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서른 해나 마흔 해나 쉰 해까지 이어질 발걸음 또한 삶입니다. 책값을 셈하고 집으로 낑낑대며 돌아간 다음, 아기를 만나고 옆지기를 달래며 힘든 몸으로 기저귀를 빨고 아기와 늦도록 씨름을 하며 방구석 어질러진 채 곯아떨어질 모습 또한 그저 삶입니다.
책에는 이와 같은 삶이 담깁니다. 글쓴이마다 다 달리 꾸린 삶이 담깁니다. 우리는 다 다른 삶을 읽어내며 내 나름대로 꾸릴 삶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다가 우리 스스로 또다른 책을 하나 내놓기도 하고, 이렇게 내놓은 책은 내 이웃들한테 또다른 맛과 멋으로 찾아들 삶자락 배인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책과 책으로 만난다지만, 곰곰이 살피면 삶과 삶으로 만나는 셈이며, 이름과 얼굴을 모른다 할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삶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는 셈입니다.
아무쪼록, 마흔 돌을 맞이한 헌책방 〈정은서점〉이 반세기라는 쉰 돌까지도 튼튼하고 즐겁게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은〉 아저씨는 힘자라는 대로 이곳에서 큰 사장님으로 헌책 일에 보람을 느끼시면 좋겠고, 〈정은〉 따님 되는 분은 아버지한테서 헌책 일을 몸과 마음으로 물려받아 앞으로 새롭게 이곳을 책삶터로 알뜰살뜰 다독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한테는 힘들지 모르겠는데, 우리 아이는 어쩌면, 헌책방 〈정은서점〉 백 돌을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헌책방 백 돌이라. 아쉽지만, 저로서는 어느 헌책방 한 군데라도 백 돌을 맞이하는 그날까지는 살아 있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옛책방이 아닌 헌책방으로서 가장 오래된 곳이 예순 해쯤 되었는데, 예순 해쯤 된 곳을 물려받을 만한 분은 없다고 느끼거든요. 더구나 예순 해쯤 된 그곳이 백 돌을 맞이하자면 그때 제 나이는 여든 가까이 됩니다. 그러나 쉰 돌 맞이하는 헌책방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그동안 그곳을 마실하면서 찍은 사진을 사진틀에 끼워 선물로 드릴 수 있다면, 저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자 보람입니다. 나중에 백 돌이 될 때쯤에는, 우리 아이가 '지 아빠가 예전에 찍은 사진을 100장 종이에 뽑아 선물로 드리'면 그때로서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꿈을 꾸어 봅니다. 그러고 보니, 헌책방 첫 일꾼 또한 백 돌까지는 지켜보지 못하고, 당신 아이한테든 누구한테든 물려주어야 비로소 백 돌을 맞이할 수 있네요. 책방 일꾼이든 책손이든 한 사람이 고이 지나가야 맞이하는 백 돌입니다.
아무튼, 백 돌에 앞서, 〈정은서점〉 쉰 돌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때 우리 아이는 열 살이 되겠군요.
덧붙이는 글 | ― 서울 연세대 앞 〈정은서점〉 / 02) 323-3085
http://jbstore.co.kr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7.14 11:53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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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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