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을 전시해 놓는 일'이란 어떻게 해야 한결 돋보이고 좋은가를, 주최한 분들이 제대로, 곰곰이, 깊이, 좀더 오래 헤아리고 살펴 주기를 바랍니다. 값싼 책 대충 얹어 놓는 일이 '전시'가 아닙니다.
최종규
〈헌책축제 2009〉에서는 (1) 헌책방 나들이, (2) 책 나눔장터, (3) 명사들의 헌책방, (4) 마임퍼포먼스-책 읽는 사람, 네 가지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첫째 행사 '헌책방 나들이'는 "자세한 헌책방 소개와 함께 맘에 드는 헌책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운이 좋으면 헌책방 주인과 헌책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하고 내걸었습니다. 둘째 행사 '책 나눔 장터'는 "헌책을 나누고자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헌책을 자유롭게 판매하고 교환할 수 있는 난장마당."으로 꾸민다고 했습니다. '명사들의 헌책방'은 "명사와 문인, 저자들이 직접 자신의 소장 헌책을 기증하고 판매하는 행사."라면서 "수익금을 소외계층을 위해" 쓴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 읽는 사람을 주제로 한 스테츄 마임이 행사장에서 열립니다." 하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제대로 펼쳐 보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임을 하는 분이 늦게 오셔서 저만 못 보지 않았을까 싶지만, 마임도 못 본 한편, '헌책방 나들이' 행사에서 어떠한 헌책방 주인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그 헌책방을 따로 찾아가서(저한테는 늘 찾아가는 단골 헌책방이기 때문에) 일꾼들한테 넌지시 여쭈었더니, 한결같이 "주최 측에서 책만 보내 달라고 해서 보냈다"고, 당신 가게를 지켜야지 그런 먼 데까지 갈 겨를이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행사를 연 분들이 내세운 말인 "운이 좋으면 헌책방 주인과" 만나서 헌책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소리는 뻥인 셈입니다. '책 나눔 장터'는 열렸는지 안 열렸는지 알 길이 없었고(행사장인 마로니에 공원에는 농구하는 아이들과 날갯짓하는 비둘기 말고는 '여느 시민이 나와 벌인 가판대'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명사들의 헌책방'은, 그저 대충 깔아 놓은 낡은 책 몇 가지 매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헌책축제 2009〉에서는 '2009 헌책 회고전'이라 하여, 마로니에공원 아르코미술관 2층에서 책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고 하기에 이 전시회를 들여다보려고 했는데, 전시관 관계자나 수위나 한목소리로 "그런 전시회가 있는 줄 모른다"고 하면서 "들어가려면 표를 끊고 들어가세요" 하고 붙잡았습니다. 더구나,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안내글이나 화살표 하나 없고, 전시관을 한참 헤매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진땀을 흘리며 '표를 안 끊고(이 전시는 그냥 보는 자리이기 때문에)' 들어가 보니, 자원봉사자 한 사람은 누가 들어오거나 말거나 먼산바라기일 뿐입니다. 저는 서울 홍제동에서 헌책방을 꾸리는 분하고 〈헌책축제 2009〉 행사장에 함께 와서 둘러보았는데, 썰렁한 전시대 썰렁한 책들을 돌아보면서 두 사람 모두 혀를 끌끌 찼습니다. 이 넓고 좋은 전시장에 '어느 헌책방에 가 보아도 흔하게 쌓여 있는 책'을 이처럼 대충 늘어놓고 전시회 이름을 붙여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