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 친구들은 원더걸스 사진이 담긴 필통을 쓴다. 나는 중학생 때에 최진실 사진을 오려붙여서 필통과 지갑을 손수 만들어 썼다.
최종규
ㄴ. 아홉 사람 눈 가운데 한 사람 눈으로(저는 이번에 '청소년 문화'를 생각하자는 '시각총서' 기획에 다른 여덟 사진작가하고 함께 일을 했습니다. '청소년 문화'를 어떻게 사진으로 찍어야 할는지, 사진으로 담는 '청소년 문화'란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일은 어떻게 꾸리면 좋을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한 장 두 장 담았습니다. 이번 사진잔치를 함께 열면서 제 깜냥껏 느끼고 생각하고 겪었던 '청소년 문화'란 무엇인지를 몇 마디 풀어내어 봅니다.)아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서 이루어진 목숨이 어머니 배속에서 영글어 고이 자라면서 세상에 나옵니다. 아기는 배속에서 영글기 앞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기도 하지만, 배속에 있을 때에나 세상으로 나온 뒤에나 사랑 한 번 못 받기도 합니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될 무렵 비로소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랑이 아닌 학습만 받으면서 머리통만 굵어지도록 짜맞추어져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기보다는, 몸뚱이를 움직여서 땀흘려 일하는 한 사람으로 키우는 분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나마 사내아이는 학문을 닦을 수 있었으나 계집아이는 학문하고는 담을 쌓아야 했습니다. 학문을 닦을 수 있는 사내아이는 높은자리에 앉아 몸에 땀을 흘리지 않고도 떵떵거리며 사람을 부리며 살았는데, 학문을 닦을 수 없던 계집아이는 사내아이 뒤치닥거리로 온삶을 바쳐야 했습니다. 참으로 고르지 못한 사회 대접이며 사람 따돌림입니다. 그런데 이런 푸대접과 따돌림은 여자한테만 모진 노릇이 아닙니다. 남자한테도 모진 노릇입니다. 여자들이 뜻과 꿈을 펴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아픔이 틀림없이 있는 한편, 남자들이 집안살림과 아이 키우기는 하나도 모르는 채 반편이로 크고 마는 아픔이 함께 있습니다.
실잣기와 옷깁기를 할 줄도 모르면서 옷을 입는 남자들은 옷 한 벌이 얼마나 고마운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농사짓기와 밥하기와 설거지하기를 모르면서 밥상을 받는 남자들은 밥 한 그릇이 얼마나 고마운 줄 어찌 알겠습니까. 집짓기와 집살림 추스르기를 할 줄도 모르면서 따순 방에서 느긋하게 잠들고 책읽고 손님 맞이하는 남자들은 우리 삶터가 얼마나 고마운 줄 어느 만큼 알겠습니까. 사람 사는 아름다움 가운데 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옷과 밥과 집을 잃거나 잊은 남자들은 '세상 다스리기'를 한다면서도 자꾸자꾸 샛길로 빠지고 뒷길로 새어나갑니다.
옛 한문을 빌지 않더라도 '집안살림을 다스릴 줄 모르면서 나라살림을 어찌 다스리는가' 하고 따질 수 있습니다.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라일을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성룡이나 홍금보 같은 홍콩 배우들이 나오는 무술영화에서 '철없는 풋내기'가 스승한테 무술을 배우기까지 '물긷기 몇 해 빨래하기 몇 해 밥하기 몇 해 청소하기 몇 해 밭갈기 몇 해 ……' 하면서 '무술은 구경도 못하고 집안일 하느라 손마디 굵어지고 온몸에 꾸덕살이 박히는' 모습을 곧잘 보곤 했습니다. 우리들이 제대로 못 느껴서 그렇지, 무술이나 학문이나 정치나 문화나 다를 바 없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구실을 먼저 한 다음에 무술이나 학문이나 정치나 문화가 있습니다. 사람 사는 구실을 못하면서 무술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사람 사는 구실을 못하는 채로 무술이나 학문이나 정치나 문화를 하니, 엇나가거나 비틀리거나 더러움에 마음이 물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