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들지 않는 골목집 문패이지만, 한눈으로 보아도 무척 오래되었음을 느낄 수 있고, 이 집을 처음 지어서 살던 때 붙인 문패가 여태까지 이어진 셈 아니랴 싶기도 합니다.
최종규
시골에 전원주택을 장만하여 지내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문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 사시는 집이 아파트이기만 할 때에는 문패가 없었습니다. 두 분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를 바라보면서 두 분이 비로소 마음과 몸을 쉴 보금자리를 마련하셨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골목집에는 우리 문패를 붙이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주인집하고 윗집 사람도 따로 문패를 달지 않았습니다. 주인집은 마흔 해 넘게 이 집에서 살아오셨다는데, 그동안 문패를 한 번도 안 달으셨을까 궁금하고, 윗집은 여섯 해째 살고 있다면서도 딱히 문패를 달 마음은 없는 듯합니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뛰놀며 동무네 집을 찾아갈 때면, 으레 '문패를 보면서' 동무네를 찾곤 했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3학년 때 동네 할배한테서 천자문을 배워 웬만한 어른 이름을 읽어낼 수 있었기에, 한자로 적혀 있든 한글로 적혀 있든, 동무네 집에 나붙은 문패를 읽으며 동무네 아버님 이름을 외곤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옛동무네에 찾아갈 때에도 코흘리개에서 스물 몇 해가 지난 오늘까지 그 집 문패가 고스란히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며 반가워 살며시 쓰다듬곤 합니다.
문패를 붙이고 있는 집은, 이 문패 역사가 아무리 짧아도 스무 해는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으레 서른 해나 마흔 해쯤은 묵은 문패일 테며, 쉰 해나 예순 해를 묵었음직한 문패도 곧잘 만납니다.
우리 집살림으로서는 '내 집'이란 엄두를 못 내지만, 옆지기는 '우리는 죽는 날까지 따로 내 집을 마련하지 말고 삯집으로 흐뭇하게 지내면서, 우리 나라 곳곳에 있는 좋은 이웃을 만나러 틈틈이 돌아다니면서 살자'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세 식구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놓은 문패 없이 살아가지 않으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