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에 묘사된 죽기 직전의 진흥왕(이순재 분).
MBC
북한산 비봉에 세워진 순수비 아래에서 흡족한 미소를 띠며 새로이 개척한 영토를 바라보던 신라 제24대 진흥왕(이순재 분). 드라마 <선덕여왕>의 초반부는 바로 이 진흥왕이 죽기 직전에 미실(고현정 분)에게 남긴 유훈에 담겨 있었다는 후계자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유훈에 담긴 원래의 후계자는 진흥왕의 손자이자 죽은 장남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이었지만, 진흥왕의 차남이자 훗날의 진지왕인 금륜왕자(임호 분)와 미실의 뒷거래에 의해 유훈이 조작되어 신라 제25대 국왕의 자리는 백정이 아닌 금륜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둘 사이의 거래란, 미실이 금륜을 왕으로 만들어주면 금륜은 미실을 왕후로 맞아들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미실은 "유훈에 담긴 진짜 후계자는 백정이었다"면서 불과 3년 만에 진지왕을 몰아내고 백정을 왕위에 앉혔다. 이렇게 해서 등극한 백정이 바로 선덕여왕의 아버지이자 신라 제26대 국왕인 진평왕(조민기 분)이었다. 이것은 드라마 속의 내용이다.
<선덕여왕> 속 진지왕은 정말 왕위를 빼앗은 걸까?그럼, 진흥왕이 구상한 후계문제에 관한 드라마 <선덕여왕>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에 얼마나 부합할까? 진흥왕이 점찍은 진짜 후계자는 누구였을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반드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삼국사기> 속의 두 가지 사실관계가 있다.
첫째, 진흥왕이 죽기 직전까지 신라에는 공식 후계자 즉 태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삼국사기> 권4 '진흥왕 본기'에는 진흥왕 27년(566)에 진흥왕의 장남인 동륜이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33년(572)에 동륜이 사망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후에 새로운 태자가 임명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이 점을 볼 때, <삼국사기> 기록상으로는 동륜이 사망한 33년으로부터 진흥왕이 사망한 37년(576)까지의 4년 동안 신라에는 공식 후계자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말년의 진흥왕이 사망 이전에 이미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는 점이다. "(왕이) 말년에 이르러는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스스로 법운이라 자칭하며 마쳤다(죽었다)"라고 '진흥왕 본기'는 말하고 있다. 드라마 속의 진흥왕은 죽기 직전에 미실에게 불가에 귀의할 것을 요구했지만, 실제로 말년의 진흥왕은 남에게 그런 권유를 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직접 불가에 귀의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말년'이 언제를 가리키는가와 관련하여, 대구사학회가 2006년에 발행한 <대구사학> 85집에 실린 '신라 진지왕의 폐위와 진평왕 초기의 정치적 성격'이란 논문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자 박용국은 "진흥왕 말년은 설령 죽는 그 해로 보지 않더라도 태자 사후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고 추론했다. 태자 사후의 정신적 충격이 진흥왕의 조기 퇴진을 초래한 동기였을 것이라는 게 그의 추론이다.
자연스럽게 이뤄진 진흥왕→진지왕으로의 권력승계
어떤 동기에서였든지 간에, <삼국사기>를 토대로 할 때에 말년의 진흥왕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에 '다른 누군가'가 진흥왕의 권한을 대행했을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태도를 놓고 볼 때에, 우리는 진흥왕의 권한을 대행했을 그 주인공이 진흥왕의 차남인 금륜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태도가 어떻길래?
진흥왕 사후의 권력승계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태도는 매우 평온하다. "진지왕이 즉위하니 …… 태자가 일찍 죽었기에 진지가 즉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왕이 죽은 비상시국 하에서 이미 죽은 태자를 대신해서 차남이 즉위했다는 이 기록은 진지왕의 왕위계승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인물(특히 백정)이나 반(反)금륜파가 진흥왕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던 상황 하에서 진흥왕 사후에 금륜이 왕위를 이었다면, 이 시기에 신라에서는 메가톤급 정변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그러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는다. 특이상황을 알려주는 사료가 없는 한, 일반적 경험법칙에 의해 역사는 해석될 수밖에 없다.
진흥왕이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그처럼 평온하게 권력승계가 이루어졌다면, 진흥왕 생전의 대행자가 진흥왕 사후에도 대권을 승계했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사기>를 근거로 할 때에, 금륜은 이미 진흥왕 말년부터 아버지의 권한을 대행하다가 아버지의 사망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왕위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