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꽂이에 보기 좋게 꽂아 둘 <여자의 식탁> 1권부터 5권까지.
최종규
그렇다고 제가 밥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못 됩니다. 그저 저 먹을 만큼 할 뿐이요, 제 밥그릇과 옆지기하고 아기 밥그릇까지는 맡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힘이 들어 드러누워 꼼짝을 못하고 있으면 옆지기가 쌀을 불리고 밥을 합니다. 집에서 지짐이도 하고, 가끔 과자도 굽습니다. 생협에서 토막닭을 사서 집에서 몇 번 튀겨서 먹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한다는 일은 내 배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잣거리 마실을 하며 하나둘 들여다보고 살피는 일이 바탕이 되고, 저잣거리 마실을 하는 동안 쌀이며 다른 먹을거리이며 어떻게 그곳까지 가고 나는 그곳에서 어떻게 장만하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됩니다. 돈 몇 푼 치르면 얼마든지 사다 먹을 수 있는 밥이 아닙니다. 돈이면 다 되는 밥차림이 아닙니다. 집에서 안 차리고 돈 주고 밖에서 사먹어도 그만인 삶은 아닙니다.
먹는 즐거움만으로 꾸리는 삶은 아니되, 먹는 즐거움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내 삶은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먹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으니 밥하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고, 밥하는 즐거움만큼 밥해 먹이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으며, 내가 다루는 먹을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길러서 내 손까지 오는가를 헤아리고 싶습니다.
.. "난 말이죠, 옛날에 이거에 푹 빠져서 마구 먹어댔던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살이 쪄서 이러다간 남편이 바람 피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우리 그인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죠 … 미안해요. 사실은 괜찮아요. 좀더 먹는다고 해도. 제대로 각오가 돼 있다면." .. (127∼129쪽)책을 한 권 사서 읽을 때에도 늘 그렇거든요. 저하고 옆지기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책이나 '새책방에서 잘 팔리는' 책에는 눈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을 만한' 책이냐 아니냐를 무엇보다 따집니다. '우리가 읽기 힘들어도 우리 아이나 우리 도서관에 찾아올 사람한테 도움이 될' 책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우리 모자란 살림으로도 기쁘게 사 주어 글쓴이와 출판사한테 도움되도록 할' 책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이런 책읽음새를 고스란히 밥하기와 밥먹기에 맞춥니다. 빨래하기와 치우기에 맞춥니다.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때에도 똑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비손을 할 때이든, 뒷간에서 똥을 눌 때에든, 아기를 씻길 때에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웁고자 읽는 책이지,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읽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웁고자 차려서 먹는 밥이지, 우리 스스로 배만 부르면 그만으로 먹는 밥이 아닙니다.
.. "얘, 이게 뭐니?" "받았어." "누구한테?" "스가이네 엄마." "스가이? 친구니?" '아니야. 오늘 잠깐 얘기만 한 거야. 왕따당하는 애랑 엮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잖아. 어쩔 수 없으니까. 잊자. 잊어버리자.' "자." "아." "먹을 거지? 네가 받아온 어야. 마멀레이드가 아주 맛있네." (덥석. 오물오물오물) '쓰다. 이게 이런 맛이었나? 이게 이렇게 쓴맛이었나? 이렇게.' (이튿날 학교 가는 길에서) "안녕, 스가이." '우와, 하야시 패가 봤나? 노려보고 있을까? 우와, 우와, 너무 무서워. 하지만 난 그 마멀레이드를 맛있게 먹고 싶은걸. 제대로 맛있게 먹고 싶어.' .. (144∼148쪽)제 어린 날, 어머니가 늘 우리를 불러 밥상 차리기를 거들도록 하고, 수저를 놓게 하며, 반찬그릇을 놓고 치우게 했으며, 설거지라든지 여러 가지를 돕도록 한 일이 더없이 고맙다고 느낍니다. 귀찮은 심부름이 아니라, 어머니한테 얻어먹는, 또는 받아먹는 밥그릇 하나가 고마운 만큼, 얼마든지 자잘한 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찌개를 끓이시는데 뭐 하나 빠져 있다 하면 얼른 저잣거리나 가게로 달려가 후다닥 사 왔고, 옆에서 물끄러미 구경하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어머니가 저한테 칼자루를 쥐어 준 적이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으나, 어설픕니다만 제 칼질은 어머니 곁에서 빤히 지켜보던 칼질이요, 밥차림이요, 반찬 손질이요, 설거지요, 뒷마무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