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느낌 골목늘 살아가는 동네 삶터를 사진으로 담을 때하고, 어쩌다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곳을 사진으로 담을 때하고 똑같을 수 없습니다. 바라보는 눈썰미이며, 찍히는 사람과 삶터를 느끼는 가슴하고.
최종규
남현동 헌책방에서는 '후쿠오카 마사노부'라는 농사꾼이 쓴 책인 《아무것도 아무것도》(정신세계사,1991)를 만났습니다. 열 해쯤 앞서 한 번 만난 책이라고 떠오르지만, 어느덧 열 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새롭게 읽으며 새롭게 느껴 보자고 생각합니다. 농사꾼인 글쓴이가 산에서 어떤 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난해한 곡을 이해하는 청각이나 두뇌는 그만큼의 음악 훈련을 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그 훈련이란 것은 성악이든 기악이든, 높고 낮고 넓고 좁은 여러 가지 음계를 구분하여 그 기능을 연마하는 것이다 … 고급스러운 예술, 고급스러운 음악, 그것들은 대부분 난해하다고 일컬어진다. 난해한 음악이란 하나의 곡 속에 극히 많고 복잡한 감정이 불어넣어진 음악이란 말이다.(220쪽)" 하는 대목이 보입니다.
옛날사람한테는 '음악'이란 따로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한참 길게 오가는데, 책에 나오는 글이 아니더라도, 옛날 여느 사람한테는 참말로 '음악'이 따로 없었습니다. 사람들끼리 부르던 일노래라든지 사랑노래라든지 어린이노래는 있었을는지 모르나, '궁중 음악' 따위는 여느 사람한테는 귀에도 와닿지 않았을 뿐더러, 여느 사람 귀에 가닿도록 스스로 문을 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찍어대는 사진이란 '오늘날 음악'하고 참 많이 닮았구나 싶습니다. 즐길 수 있는 사람만 즐기는 놀이거리, 익히면 익힐수록 더 재미있다고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조금도 알아채거나 느낄 수 없는 놀이거리, 돈이 있어 더 뛰어나고 빼어난 장비를 쓰면 한결 돋보이는 작품을 얻는다고 하는 놀이거리, 돈이 없어 값싼 장비를 쓰면 아무 작품도 얻어내지 못할 듯 여기는 놀이거리, …….
헌책방 두 곳 나들이를 마칩니다. 책값은 모두 육만 원을 치렀습니다. 지갑이 홀쪽해졌습니다. 또 이렇게나 많은 돈을 써 버렸네 싶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그러나 내 마음 왕창 흔든 책이 눈앞에 있는데 지나치지 못합니다. 내 어설픈 눈을 틔우고 내 모자란 생각그릇 밝히는 책을 뻔히 손으로 쥐어 펼치고 읽고 곰삭여 보았는데, 이 책을 도로 책시렁에 꽂아 놓을 수 없습니다. 하기는. 오늘 고른 《17+i, 사진의 발견》이라는 책에 "남편과 함께 조촐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영어 번역자인 또 한 친구는 결혼 전부터 넉넉치 않은 용돈이지만 매달 꼭 10만 원씩 책을 사는 데 썼다. 서점에 다녀오는 그녀의 두 손은 늘 따끈따끈한 시집과 소설로 가득했다. 외식 한 번, 여행 한 번 맘 편히 못하는 생활이지만 책을 사는 데는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108쪽)"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책은 (사진 이야기는 그다지 재미없고) 이 대목을 읽고 나서야 사들었지만, 저와 옆지기는 우리 살림살이에서 '책값 쓰기'와 '사진값 쓰기'는 아예 살림돈으로 치지 않습니다. 책값에 나가고 사진값에 나가는 돈은 아예 딴 어디에서 샘솟기라도 하는 듯 여깁니다. 이렇게 살림을 꾸리니 다달이 주머니가 새다 못해 찢어지고 있습니다만, 우리로서는 바깥밥 안 먹고 어디 돈 나가는 데가 없으니 걱정이나 근심은 없습니다. 아기와 함께 지내 즐겁고, 책과 같이 있어 기쁩니다. 그러면서 사진이 살며시 우리 삶에 스며듭니다. 저는 때때로 자전거를 타고 먼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