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43기념공원에서.별은 제법 힘든 일정을 잘 소화했다. 물론 평소보다 자주 업어달라고 응석을 부리기는 했지만.
주재일
다섯 살배기 딸아이와 제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유채꽃 흐드러진 길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제주 남쪽 바다와 한라산을 번갈아 보며 걷는 산책길 '올레'도 일품이었습니다. 좋은 길안내꾼을 만나 들르는 음식점마다 맛난 제주 토속 음식을 저렴하게 맛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절경과 먹을거리에 안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역사 기행'을 하는 중이었으니까요.
우리는 20여 명의 청년들 틈에서 제주 4․3사건의 흔적을 밟아갔습니다. 해방의 벅찬 감동이 채 가시지도 않은 1947년 3월 1일 독립을 자축하러 제주 역사상 최대 인파가 모인 제주북초등학교와 관덕정 앞 광장부터 들렀지요. 과잉진압을 하던 경찰이 결국 총을 쏘았고 갓난아기를 안은 젊은 처자를 비롯해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싸움은 7년 동안 3만 명이 죽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대부분 경찰과 군인이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찾은 곤을동, 다랑쉬마을 등은 억울하게 죽어간 양민들의 피울음이 제주 특유의 바람과 섞여 불어오는 듯 했습니다.
"별아, 제주에 오니까 뭐가 제일 많은 것 같아?"
"몰라."
"잘 생각해봐. 네가 좋아하는 거야."
"으음~. 돌!"
별은 돌을 참 좋아합니다. 작은 호주머니에 어디서 주운 돌을 넣어옵니다. 허락 없이 버렸다가는 낭패를 봅니다. 제주에서도 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돌을 보고 가만있지 못했습니다. 이 돌 집었다가 저 돌 집었다가.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 가져갈 수 없는지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지요.
"그리고 또 많은 것은 뭘까?"
"몰라."
"잘 생각해봐. 여기 오니까 춥지 않아? 왜 추울까. 뭐가 많이 불잖아."
"아~. 바람"
"맞았어. 또 많은 게 있어. 뭘까."
"왜 자꾸 물어~."
서서히 짜증을 내는 별에게 설명했습니다. 바로 '여자'가 많다고. 왜 그런지도 이야기했지요. 60년 전 젊은 남자들을 너무 많이 죽이고 끌고 가서 여자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참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돌아다닌 북촌도 온통 여자들만 남았다고 합니다. 북촌에 있는 너븐숭이라는 곳에는 4․3 사건 때 죽은 아이들을 묻은 무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별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죄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이 나라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이들은 50년 가까이 진실이 새어나오지 않게 입막음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국가 권력을 잘못 사용했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도 한을 다 풀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안내한 역사학자는 아직도 찾지 못한 유골이 제주 도처에 널려 있는데, 관계 당국은 발굴하는 데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4․3평화공원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거'의 아픔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물관이 다 그렇겠지 했는데, 상당히 잘 만들어놓았습니다. 차분하게 돌아보면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학생들 수학여행은 물론이고 놀러 가셨더라도 이곳에 들러보세요. 아름다운 제주가 품고 있는 깊고 진한 슬픔과 제주 사람들의 의로운 용기를 배워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낯익은 이름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병옥'. 우리 마을 바로 위에 조병옥씨의 큼지막한 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박사라고 부르지만, 4․3 사건 당시 그는 경무부장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경찰청장쯤 되는 경찰 총책임자였지요. 그를 훌륭한 인물로 추앙하는 이들이 많습니다만, 슬프게도 역사 속에 그는 꼭 그렇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