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공씨책방>이 자리한 서울 신촌 밤거리.
최종규
(1) 책읽기란?하루에 책 한 권씩 읽으면 한 해에 삼백예순다섯 권입니다. 하루에 책 두 권씩 읽으면 한 해에 칠백서른 권입니다. 하루에 책 세 권씩 읽으면 한 해에 천아흔다섯 권입니다.
오늘날 같은 세상에서 날마다 책을 한두 권, 또는 서너 권씩 읽기란 거의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지지만, 책은 느긋함과 한갓짐만으로는 읽어내지 못합니다. 밥벌이를 안 한 다고 하여 더 많이 읽어내는 책이 아니며, 밥벌이를 한다고 하여 덜 읽게 되는 책이 아닙니다.
제 책읽기를 더듬어 보면, 한 해에 천 권 사서 읽기를 1999년부터 넘겼습니다. 사서 읽는 책만 이만큼이니, 사지 않고 책방에 선 채로 살피거나 읽는 책은 더욱 많습니다. 이리하여 집에 모셔 두게 되는 책은 여러 만 권에 이르게 되고, 책이름만 훑은 책은 수천만 권을 웃돕니다. 세상 모든 책을 다 훑기조차 어렵기는 할 터이나, 꾸준하게 바지런을 떨면 웬만한 책을 어렴풋하게나마 훑어낼 수 있습니다.
책 천 권이란 숫자는 참으로 우습습니다. 흔히들 이런 숫자에 크게 짓눌리는 듯한데, 만 권을 읽든 십만 권을 읽든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백만 권 읽은 분께서 세상을 그릇되게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천만 권 읽은 분께서 세상을 비뚤어지게 바라보면서 허튼 짓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뽐내는 이라 할지라도, 올바르게 몸가짐을 추스르지 못하면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아무리 빼어난 몸매와 얼굴을 자랑하는 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말을 일삼으면 사랑받지 못합니다.
한 권을 읽어도 꼼꼼히 잘 읽을 노릇입니다. 두 권을 읽어도 가슴으로 새길 노릇입니다. 세 권을 읽어도 온몸으로 받아들일 노릇입니다. 네 권을 읽어도 기꺼이 제 얕은 지식이나마 세상과 널리 나누면서 펼쳐 보일 노릇입니다. 책이란, 머리속에 가두려고 읽는 책이 아니니까요. 책이란, 머리가 아닌 팔다리에 새기면서 가슴으로 삭이고 몸뚱이로 녹여내는 책이니까요.
헌책방 〈공씨책방〉 아주머니는 어느새 열여섯 해째 꾸준하게 뵙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곳 〈공씨책방〉에 찾아오던 날을 더듬으니, 그때만 하여도 저는 열아홉 푸름이였고, 헌책방 아주머니는 한창 젊은 날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한창 젊은 날을 맞이하는 셈이고, 헌책방 아주머니는 할머니 나이로 다가섭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만나거나 스친 책이 몇 권이었을까 어림해 보고, 또 이곳에서 장만한 책은 또 몇 권이었을까 헤아려 보면서, 스스로 놀랍니다. 그리고, 꽤나 많은 책을 오랜 나날에 걸쳐 사 읽으면서 제 삶을 얼마나 가꾸었는지 돌아보는 동안, 참슬기와 참사랑과 참믿음을 잘 추스르고 있나 아닌가를 짚으면서 부끄러워집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모자라다 하여도 앞으로 하나둘 채우면서 보듬으면 되니까, 아직까지 어설프다 하여도 이제부터 조금씩 북돋우면서 가꾸면 되니까, 아직까지 뒤떨어져도 찬찬히 몸과 마음을 갈고닦으면서 거듭나면 되니까, 모자라고 어설프고 뒤떨어진 그대로를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생각합니다. 제 눈과 머리와 가슴과 몸에 들어온 책 여러 만 권에 머물지 말고, 오늘부터 새롭게 만날 '새로운 책 한 권'에 마음을 쏟자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