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밤 서울 청계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용산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를 마친뒤 추모미사 행렬이 명동성당으로 행진을 하다가 을지로 롯데백화점 앞에서 경찰들이 인도로 이동을 요구하며 사제단을 밀어내고 있다.
유성호
천주교 지도층과 신자들의 보수화는 천주교 전체의 대사회적 발언과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고 있다. 한때 시민사회나 노동·빈민단체들의 마지막 피난처 역할을 했던 명동성당은 건물보호와 신자들의 반대를 이유로 더 이상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주교 이상 고위사제들 역시 사회 문제에 대해 대부분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인권탄압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전혀 언급이 없고 오히려 사제단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용산철거민 참사 때도 사제단 외에 현장을 찾은 주교급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김 추기경과 함께 살아 있는 양심으로 민주화운동의 방패역할을 했던 고 지학순 주교와 같은 이들이 더 이상 없다.
올 3월 개원을 앞두고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CMC)이 수천억을 들여 지은 서울성모병원이 하룻밤 입원료가 400만원을 웃도는 VIP전용 초호화 병실을 만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도 자매기관인 강남성모병원에서는 작년 9월 비정규직을 집단해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천주교의 보수화로 사제단의 활동 역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교회 상층부의 압력은 물론 신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양준석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천정연) 사무국장은 사제단 신부가 재직하는 성당의 일부 신자들은 사제단 신부들의 인사조치를 요구하고 미사 때 정부나 삼성 등 재벌에 대한 비판 강론을 못하도록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제단 외에 교회 내 진보적 단체들도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대구대교구 같은 경우는 1980년대 이미 청년학생운동의 싹이 잘렸고, 조성만 열사를 배출하는 등 한때 학생운동의 메카 역할을 했던 명동성당청년학생연합회(명청)도 명맥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대외적으로도 그다지 전망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를 파문하는 데 앞장섰고 교황 즉위 후에도 라틴어 미사 부활추진, 동성애와 여성차별, 타 종교에 대한 천주교의 우위 강조, 나치 옹호 주교 복권 등을 통해 천주교의 역사를 뒤로 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천주교의 성장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와 각종 위원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체계화된 조직구조, 낮은 재정비리, 비교적 양질의 사제수급 능력과 순환보직, 효율적인 신자 관리는 종교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는 향후 천주교 신자 수는 2010년 522만명, 2015년 583만명, 2020년 644만명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종교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면 괜찮은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일요 미사 참여율이 낮아지는 등 냉담자가 늘어 비관적이라는 말도 있지만 초파일, 백종, 천도재 등 중요 행사 외에 사찰출입이 많지 않은 불교신자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다.
현재 한국천주교는 종교의 두 날개인 제사장적 기능과 예언자적 기능 중에 예언자적 기능은 포기하고 권위적이고 현실안주적인 제사장적 기능에 치중하면서 부자들과 권력의 종교로 줄달음치고 있다.
개신교가 1970~8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반체제/반정부 가능성이 있는 이농인구와 도시빈민을 흡수해 탈역사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면 2000년대의 천주교는 중산층의 수구보수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개신교가 지향했던 공격적인 방식을 모방해 신도시를 중심으로 본당확장에 막대한 물량을 투입하는 등 종교시장의 선두에 서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다.
앞으로 한국 천주교는 양적으로는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질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개신교가 양적으로는 엄청 늘었지만 결국 물량주의와 물신주의로 한국사회에서 지탄을 받고 있는 것처럼 천주교도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은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들에게는 더없이 약했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는 겉으로는 김 추기경 추모에 큰 공을 들이고 있지만 암울한 현실상황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강자의 편에서 약자를 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추기경은 천주교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도 따르기 싫은 매우 예외적인 인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예수가 사람이 아니라 신으로 모셔지면서 보통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한 존재로 박제화되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김수환이라는 대붕이 양쪽의 큰 날개로 한국 천주교를 더 없이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지만 한국천주교는 그 높은 곳에서 한쪽 날개로만 날아가려고 하고 있다. 정치권력과 재벌, 가진 자만을 위한 날개만으로 과연 얼마 동안 날아갈 수 있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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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김 추기경 같은 인물 더는 나오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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