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최근 발견된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 등 여성들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사도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제공
남성 중심의 종교권력이 여성을 배제한 것은 당시 차별받았던 여성들이 불교나 기독교를 해방의 종교로 인식하고 포교와 교단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교단내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붓다의 제자 비구니들의 게송(불교의 가르침을 짧게 표현한 시의 일종)을 모아 놓은 <장로니게>에는 초기 여성출가자들의 심경과 생활, 수행상황들이 잘 나타나 있다. 붓다시대부터 내 구전되어온 <장로니게>에는 시집살이에 혹사당한 여성, 기녀, 매춘 여성과 같은 밑바닥 여성들의 출가와 성불이 소개되고 있고 그들의 포교활동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초기 기독교의 선교활동을 기록한 <사도행전>에도 여성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으며 근래에 발견된 <도마복음서> <빌립복음서> <마리아복음서>와 같은 영지주의 기독교 문서는 정통기독교가 창녀로 묘사한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를 능가하는 예수의 수제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 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입맞춤할 정도로 가까웠으며(도마복음서), 예수와 항상 동행하는 인물로 다른 제자들의 질투를 받고(빌립복음서), 예수가 그녀에게만 특별계시를 내리는 내용(마리아복음서)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기독교 역사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고 막중했음을 보여준다.
원시 불교와 기독교가 여성의 깨달음과 지도적 역할을 인정했음에도 오랜 제도화 과정에서 여성들을 배제해온 불교와 기독교는 한국 땅에 들어와 유교와 결합하면서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해 나갔다. 불교의 경우는 성리학이 국가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공고해졌다.
근대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한용운 선생조차 한국사회의 유교적 전통에 호소하기 위해 <아함경>의 일부 내용을 인용해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이른바 <현모양처>에 머물도록 규정하기도 했다. 마치 불교도 여성문제에 한해서는 유교와 같은 편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남녀권리동일이라는 여성해방의 이념을 실천해온 원불교도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의 뜻과는 다르게 남성성직자(교무)의 결혼은 인정하면서 여성성직자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정녀(貞女)제도를 통해 차별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에 대해 원불교 정녀선서 대상자 중 일부가 2001년 11월 '독신상태에서 수도하고 봉사하겠다'는 내용의 정녀선언을 거부하기도 했다.
유교 전통과 만난 불교와 기독교, 여성 위에 군림하다기독교 역시 미국 근본주의 신앙과 유교적 전통이 결합해 여성의 제도적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여성안수를 거부하는 한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성서의 내용은 신의 계시로서 일점 일획도 고칠 수 없다는 성서무오설에 따라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질서를 강요하면서 교회 안에서 남성 성직자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불교와 기독교는 한국에서 그들과 대척점에 섰던 유교전통과 손잡고 절대다수의 종교대중(여성) 위에 군림하고 있다. 주나라의 남녀차별과 장유유서의 사회질서, 도덕규범, 예의규범이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이어서 단지 개개인이 모두 그것을 엄격히 준수하기만 하면 사회가 안정되고 천하가 태평할 수 있다고 주장한 과거회귀주의자 공자의 사상이 혁명가들의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를 포섭해버린 것이다.
물론 기존 종교의 역사적 과정도 크게 한몫을 했지만 불교와 기독교가 유교적 전통과 맞물리면서 마치 물만난 고치처럼 기존의 가부장적 제도를 옹호하고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구적 전통도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여성들의 오랜 투쟁으로 비구니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여성 안수를 허용하는 교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뛰어난 여성 종교지도자들이 등장해 기존 종교권력과는 다른 영성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까지 시대착오적인 교리를 근거로 여성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천주교도 당장은 아니지만 시대변화에 따라 적절한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예는 아니지만 미국 천주교인의 약 70%가 여성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보고되고 있다.
붓다나 예수가 과거 전통과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현재의 불교나 기독교는 창시자들보다 더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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