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궂은 낙서사람이 뻔히 살고 있는 집 담벼락에 이렇게 스프레이 뿌려서 낙서를 해대면 어찌 될까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낙서질을 한 아이들은 무슨 마음이요 무슨 생각이요 무슨 매무새일는지요.
최종규
ㅁ이라는 출판사에서 사진책을 두 가지 보내주었습니다. 뜻밖이라고 할 책인데, 제가 쓴 ‘사진 이야기’를 읽고 보내게 되었다는 편지가 책 사이에 꽂혀 있습니다. 두 장에 걸쳐 써 준 편지가 고마워서 꼼꼼하게 사진책을 읽어 나가는데, 한 권은 영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짙게 들어서 덮어 버리고, 다른 책 하나는 부지런히 읽어 끝마칩니다. 그렇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제법 도톰하게 나온 이 사진책, 가만히 따지면 사진책이라기보다는 ‘사진 몇 장 곁들인 수필책’인데, 책겉에는 ‘포토에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지만, ‘사진’도 아닌 ‘포토’라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붙여도 될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이 책을 쓴 분은 ‘사진일을 하고’ 있습니다. 퍽 이름난 노래꾼들이 내는 음반에 쓰이는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스튜디오도 꾸리며, 패션화보에도 사진을 싣습니다. 갈래로 나누자면 상업사진인데, 상업사진이라서 마뜩하지 않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상업사진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누구나 찍는 흔한 사진’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사진가 ○○○ 사진’이라고 할 만한 사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딱 하나, 놀이공원 허니문카 찍은 사진은, ‘사진가 ○○○ 사진’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포샵질은 거의 안 한다고 하니 그만큼 사진기에 모든 눈과 마음을 쏟는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만큼 ‘자연스러운 사진을 좇는다’고 하면서, 이이가 찍는 사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사람 움직임과 사람 삶터를 담는지’까지는, 글쎄, 아직 나이 서른도 안 된 젊은이한테 너무 많이 바라는 셈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을 앞세워 ‘포토에세이’라고 내놓고자 했다면, 나이 서른이고 스물이고 마흔이고 쉰이고를 떠나서, ‘나는 내 사진을 찍는 ○○○입니다’ 하고 느껴지도록 사진으로 보여주고, 사진에 붙이는 글로 함께 들려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런 마음결이 되지 못한다면, 지난날 연예인으로 일했던 발자취에다가 요즈음 잘나가는 몇몇 노래꾼 사진을 찍어 주었다는 손자국으로 ‘책 팔아먹는’ 일을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요.
그래도, 이이 수필책을 읽으며,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찍은 사진을 하나 넣어 주었기에, 책이 아주 밉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토록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고 즐기던 마음이었다면,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믿는 가장 가까이 있는 식구들부터 사진으로 담아내어 자기 목소리와 생각을 우리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ㅈ’이니 ‘ㅌ’이니 하는 노래꾼들 사진만 수두룩하게 보여주지 말고,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살붙이 모습을 담은 사진을 좀더 골고루 보여줄 때, 자기 지난날과 오늘날이 우리들한테 한결 푸근하고 넉넉히 스며들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