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현문서가
아기가 하루에 네 번쯤 똥을 누면 참으로 괴롭습니다. 날이 더운 여름날이라면 더위를 식힌다며 찬물로 벅벅벅 문질러 빨 텐데, 손도 몸도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면 에휴 하는 한숨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그나마 찬물로 빨면 온 손가락과 손바닥이 쩍쩍 얼어붙으며 벌겋게 되기에, 보일러를 돌려 방을 덥히고 따순 물을 쓰면서 빨기는 하는데, 이렇게 빨래를 해도 얼어붙는 손은 녹지 않습니다. 똥기저귀 빨래가 아니더라도 날마다 몇 시간쯤은 씻는방에 쭈그리고 앉아서 기저귀며 옆지기 옷가지며 부지런히 빨아야 하니 몸이 축나고 마음이 지치고 머리는 텅 비어 버립니다.
.. 리얼리즘 사진은 ‘사진을 위한 사진’이 아닌 ‘삶을 위한 사진’이다 … 리얼리즘 사진은 형식주의와는 달리 사진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파악한다 … 내용과 긴밀하게 얽히지 않은 형식적인 사진은 공허하다 .. (15∼16쪽)고단함은 빨래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가 깃들인 집은 바람막이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불을 넣지 않는 방은 영 도 밑으로 떨어집니다. 어디 산골짝 집도 아니건만 이렇게 추운 집일 수 있으랴 싶은데, 돈없고 집없는 살림살이로서는, 한데에서 별도 안 보이는 칙칙한 하늘을 이불 삼지 않는 일로도 고마워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불 때는 방은 바닥이나마 뜨시고 이불이라도 덮으면 입김 콧김 서리기는 해도 얼어죽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방이 춥다고 해도, 또 집이 썰렁하다 해도, 기저귀 빨래라도 잘 말라 주면 좋을 텐데, 기저귀 빨래는 날이 춥고 집도 추우니 제대로 안 마릅니다. 열 시간쯤 널어 놓아도 마를 낌새가 없고 열다섯 시간쯤 가만히 널어 놓아도 안 마릅니다. 다 말려서 개 놓은 기저귀가 꼭 한 장이 남을 무렵 하는 수 없이 다리미로 말립니다. 바깥일 하랴 집일 하랴 기저귀 빨래 하랴 뭐 하랴 이거 하랴 저거 하랴, 그야말로 눈코 뜰 사이가 없습니다. 그 좋아하는 ‘헌책방 나들이’조차 한 주에 한 번은커녕 두 주에 한 번조차 못하면서 살게 됩니다. 견진성사까지 받은 천주교 신자가 된 몸이지만, 미사 드리러 가지도 못합니다. 내 코가 석 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날이고 요일이고 어떻게 가는 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인간이 사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사진작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진을 위해 꾸준히 이념과 소재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 아무리 표현기법이 뛰어난 사진이라고 해도 내용이 뚜렷하지 않다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런 사진에서는 힘을 느낄 수 없으며 가치 있는 사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 (30∼31쪽) 옆지기는 지난 12월 7일에 아기 유아세례를 받게 된다고 기뻐하며 당신 어머님한테도 전화를 하고 대모 설 동무한테도 전화를 했습니다. 날짜를 받고 나서 당신 어머님과 전화를 하다가, 아기가 세례 받는 날이 자기 지아비 난날임을 알게 됩니다. 당신 어머님이 “그날 니 남편 생일 아니야?” 하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지아비 된 제가 옆지기 난날이라 해서 더 기리거나 사랑해 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옆지기 어머님한테 고마워하고, 그동안 얼마나 애쓰셨을가를 돌아볼 뿐입니다. 제 난날이라고 하는 12월 7일도, 지어미 된 옆지기가 더 마음쓰거나 기뻐해 줄 일이란 없습니다. 그저 우리 어머니한테 전화라도 걸어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 우리 아기가 이 추위에도 모쪼록 튼튼하게 버티어 내면서 씩씩하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 러셀 리(1903∼1986)는, 사진이 시대적 소명에 무관심하다면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사진작가 이전에 한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모든 작품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창조했다 .. (170쪽)사진 일감 때문에 서울 나들이를 하던 어느 날 저녁입니다. 사진 일감은 모두 아홉 사람한테 같은 이야기감을 던져 주면서 맡겼는데, 뚜렷한 듯하지만 하나도 뚜렷하지 않은 사진감이고, 함께 사진 찍을 다른 분들 사진이 저로서는 하나도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 사진이 이분들보다 빼어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하나같이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저는 한 가지 사진감을 깨닫고 부지런히 사진찍기를 하게 된다고 하면, 적어도 열 해쯤은 그 한 가지 사진감을 파헤치고 캐내면서 이야기를 엮어야 비로소 성에 찰까 말까 한다고 느끼는데, 고작 다섯 달쯤 시간을 주면서, 일삯도 아주 조금 건네며 사진을 찍으라고 하니, 제가 무슨 노예도 기계도 아니고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그런 사진 일감이나마 받아 아쉬운 살림돈으로 쓰자고 생각하기도 했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맡게 되더라도 그 짧은 동안 한 가지 사진감을 내 깜냥껏 파헤치면서 공부를 해 보자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날 저녁 두 번째 모임을 하는 동안, 또 모임을 마치고 저녁밥을 함께 먹는 동안 몹시 슬펐습니다. 다들 사진으로 먹고살고 있을 뿐 아니라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는 분들인데, 밥자리에서 어느 한 마디도 ‘사진 이야기’를 하지 않더군요. 모두들 사진을 아주 잘 알아서 그런지, 세계 온갖 나라 사진책이며 사진 문화를 훤히 꿰뚫고 있기에 굳이 할 말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릅니다. 어쩌다 보니 어제 서울 나들이를 할 때, ‘토몬 켄(土門 拳)’이라고 하는 일본 사진작가 두툼한 사진책 하나를 들고 가게 되었는데, 이 사진책을 알아본 분은 열세 사람 가운데 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 사진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가장 정확히 표현하는 예술 분야이며, 그 바탕에는 리얼리즘 정신이 깔려 있다. 따라서 진실한 사진이란 사진작가가 끊임없이 현실을 발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진작가는 항상 세상일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젊은 사진작가들은 인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 의미 없는 사진만을 창조한다. 치열한 고민과 노력 없이 창조된 사진의 생명은 매우 짧을 것이다 … 사진은 이제 특정인의 성역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예술 분야가 되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찍은 사진은 개성적이라기보다는 무분별하게 미적 가치의 혼란만이 보인다. 대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 없이 맹목적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사진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진실한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자신에게 항상 던져야 한다 .. (4, 33쪽)뭐, 일본 사진작가가 그리 훌륭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토몬 켄이든 아무개든 일본에서 내로라 해 보았자 한국 사진밭하고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다른 이 사진책을 보거나 말거나 자기 길만 꿋꿋하게 걸어가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그 추운 날, 두 손이 꽁꽁 얼어붙어 가면서도 그 사진책을 한손으로 들고 길을 걷는 내내, 슬프면서 쓸쓸했습니다. 사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사진이 참으로 좋다고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사진에 죽고 사는 사람을 보지 못해서, 사진 찍으면서 산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깨나 손에 사진기를 들고 있지 않아서.
.. 단순한 경치는 쉽게 찍을 수 있지만, 강렬한 호소력이 담긴 풍경사진을 찍는 데에는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과 기법이 뒤따라야 한다 .. (56∼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