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켄트의 식당가운데가 알리, 좌측은 식당 주인
김준희
6년 동안 열심히 일한 그 돈을 모아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귀국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을 한 셈이다. 고향인 밥켄트로 돌아온 알리는 이곳에서 목재공장을 차려서 지금 성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법노동자에서 사장님으로 신분이 변한 것이다.
"처음에 불법취업했을 때 겁나지 않았어요?""아뇨, 겁 안 났어요. 어차피 다 각오하고 갔던 거라서."회사에서 숙식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생활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단다. 일종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같은 우즈베키스탄 동료들끼리 모여 술자리도 자주 갖고 양고기 꼬치구이도 만들어 먹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돼지고기를 못 먹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돼지고기를 많이 즐겼고 지금은 한국라면과 김치가 그립다고.
"나 돼지고기에 소주 2-3병도 먹어요. 김치찌개에도 소주 잘 먹어요."우리가 맥주를 마시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자 식당의 주인도 합류했다. 그는 연신 음식을 내오면서 먹으라고 권한다. 알리가 나한테 오늘 어디서 잘 거냐고 묻자 그제서야 아키람 생각이 났다.
"아키람이라는 사람이 나한테 집을 빌려줬어요.""아키람 알아요. 내가 전화할테니까 그냥 우리집으로 가요."그러더니 휴대폰을 꺼내서 아키람한테 전화를 한다. 역시 이곳도 좁은 지역사회다. 잠시 후에 아키람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다같이 보드카를 마시면서 떠들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리의 집으로 잠자리를 옮기려니까 나를 위해서 애써준 아키람한테 좀 미안하다. 아키람의 집에서 짐을 모두 꺼내오고 아키람에게 열쇠를 건네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아키람과 헤어져서 알리의 집으로그리고 알리의 승용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남의 집에 가면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 나는 중간에 있는 상점에서 과일과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조금 샀다. 알리의 집에 도착하자 그의 어머니와 부인, 3명의 자녀가 날 맞아준다.
알리의 집은 크고 깨끗하다. 수세식 화장실에 상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우즈베키스탄의 지방에서는 대단한 것이다. 거기다가 대형 텔레비전에 냉장고와 에어컨, 오디오, 진공청소기까지. 컴퓨터만 빼고 이 집에는 없는 것이 없다. 내가 자리에 앉자 알리는 또 술을 내온다. 탁자에는 빵과 과일이 안주로 놓여 있다.
"여기 와서 꿀 먹었어요? 여기 꿀은 진짜 꿀이에요."작은 그릇에 담긴 꿀을 나한테 권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서 생겨난 꿀이니 진짜겠지.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꿀도 조금씩 맛보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면 좋을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6년 동안 알리는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을까.
한국사람들 좋고 한국음식 맛있다고 말하지만, 타향살이를 하다보면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텐데.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결국 보상을 받은 것이다. 지금 알리는 밥켄트에서 손꼽히는 부자이자 사장님이 되었다. 40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텔레비전에서는 우즈베키스탄과 이란이 축구경기를 펼치고 있다. 알리와 나는 그 경기를 보면서, 술을 마시고 얘기하다가 같이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누웠다. 오늘은 여러가지로 운이 좋았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