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히는 대상을 보는 눈자기가 찍는 대상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또렷이 알아야 합니다. 지식으로도 알고 가슴으로도 알아야 합니다. 모르는 채 우연으로 멋진 사진 하나 잡아챌 수도 있으나, 이럴 때에는 스스로 멋진 사진을 잡아챈 줄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기 일쑤입니다. (인천 남구 숭의동 골목길에서, 골목집 대추나무가 겨울나기 하는 모습)
최종규
다만, 사진은 즐겨야 찍을 수 있습니다. 즐기지 않는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무거운 짐입니다. 괴로운 굴레입니다. 놀이가 되지 못하는 일은 일이 아니고, 일거리처럼 꾸준히 붙잡을 수 있지 않는 놀이는 놀이가 아닙니다. 일이든 놀이이든 즐겨야 하고, 즐기는 가운데 일은 일대로 놀이는 놀이대로 빛이 나고 우리 삶으로 녹아듭니다.
즐길 수 있으니 늘 곁에 두고, 늘 곁에 두니 삶입니다. 저절로예요. 억지가 하나도 깃들지 않습니다. 스스럼이 없습니다. 샘솟아 납니다. 철철 솟아나며 흘러넘치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어차피 철철 샘솟아 흘러넘쳐도 다시 땅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솟아나는 밑물이 될 뿐 아니라, 다시 흙을 거쳐 땅밑 깊숙하게 파고들면서 더 싱그럽고 맑고 맛난 물로 거듭나거든요.
그래서 사진 한 장이란, 저절로 찍히는 사진이어야 합니다. 저절로 찍히자면 사진이 제 삶이어야 합니다. 늘 붙잡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리 보아도 사진이고 저리 보아도 사진이어야 합니다. 훌륭한 소설 하나 엮어낸 분이 이리 보아도 소설이고 저리 보아도 소설이듯, 사진쟁이는 이리 보건 저리 보건 사진이 되어야 합니다. 값비싼 장비를 어깨에 메고 있다고 사진쟁이입니까? 훌륭한 장비를 비싼 사진가방에 챙겨 놓고 으스댄다고 사진쟁이입디까? 지금으로서는 널리 이름을 날리는 유명인사로 우쭐거린다고 이이가 사진쟁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 줄 압니까? 지금은 돈도 벌고 이름도 얻고 사진판에서 힘도 낼 테지요. 그러나 이이 작품은 기껏 한 장조차도 사진 역사에 새겨지지 못합니다. 부스러기입지요. 끄나풀입지요. 알맹이 빼먹은 과자봉지와 같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두 손은 가볍게 봉투는 두툼하게’라고 말하는데, 그예 우스개이긴 하지만, 우스개로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겉보기로는 으리으리 보일지 몰라도 속알맹이가 형편없다면 하나도 안 반갑거든요. 겉보기로는 수수하거나 초라하기까지 하더라도 속알맹이가 야무지거나 다부지다면 더없이 반가워요. 세상 어느 일이든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사진찍기에서도 그럴싸하게 보이는 작품을 애써 만들어 내려고 하면 지금 바로 보기에는 참 멋져 보일 수 있습니다. 남들 앞에서 자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럴싸한 사진을 못 찍는 사진쟁이가 있을까요? 남들 다 찍을 수 있는 그럴싸한 사진을 자기도 한두 장 찍었다고, 내 이름값이 올라가기라도 할까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님처럼 ‘기막힌 모습 하나’를 찍어내는 사진을 수없이 모은들, 이런 사진이 사진으로 값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사진으로 살지 않으면 모두 부질없습니다. 헛것 헛일 헛품 헛사진입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밥하기를 삶으로 받아들이고 빨래하기를 삶으로 받아들이며 아이키우기를 삶으로 받아들일 때에는, 밥과 빨래와 아이가 새삼스럽습니다. 훌륭합니다. 우리한테 맛난 된장찌개 끓여 주는 어머님들 손맛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바로 삶을 모두 바친 밥하기에 있습니다. 그 비싼 세탁기로 보송보송 말린 빨래라 해도 어머님이 손으로 빨아서 말리고 개어 놓은 빨래만큼 느낌이 보드랍지 못합니다. 바로 삶을 모두 바친 빨래하기이기 때문입니다.
똑똑함을 넘어서 슬기롭고 해맑은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는 까닭은, 아이한테 온통 바친 아름다운 어버이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조기교육 때문에 죄다 갖다 바치는 삶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즐거울 어버이 삶을 깨달아 서로서로 돕고 나누는 삶으로 꾸리는 어버이이기에, 아이들이 슬기롭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 한 장이 아름다우려면, 또 우리가 나누려는 사진이 빛나려면, 그리고 우리가 보여주는 사진이 어설픈 자랑거리나 섣부른 돈지랄이 되지 않도록 하자면, 사진을 삶으로 곰삭여야 합니다. 사진을 삶으로 녹여내야 합니다. 곰삭이지 않는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녹여내지 않은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흔한 말로 용두질입니다. 거친 말로 술주정입니다. 짜증 섞인 말로 미친 짓입니다. 한 마디로 웃기는 장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