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랸 미나레트 정상에서내려다본 미리아랍 메드레세(신학교)
김준희
나도 그렇게 걸어서 결국 정상까지 왔다. 꼭대기에 있는 여러 개의 창을 통해서 바라본 부하라 구시가지의 모습은 탁트인 상쾌함으로 다가온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바로 아래에는 칼랸 성원과 미리아랍 메드레세(신학교)가 있다. 창의 크기는 성인 남자 한 명이 통과할 정도가 된다.
그 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더니 아찔해진다. 나한테 고소공포증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여기서 저 아래까지 떨어지려면 고작해야 몇 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탑을 처형장소로 선택한 것도 이해가 된다. 떨어지면서 죽음을 맞는 시간은 아주 짧고, 그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시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사형수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주기 위해서 이 만큼 좋은 방법도 없을 정도다. 자루에 담긴 자신을 끌고 계단을 오르던 집행인의 발길이 어느 순간 멈추면, 그 공포는 극대화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창밖으로 자유낙하를 시작하면서 처절한 비명소리도 내뱉었을 것이다.
만일 공개처형이었다면, 모여있는 군중들에게도 효과적으로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다. 세계 어디서나 정복자와 지배자들은 적절한 수준의 공포를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갈 수 있을 테니까.
저 멀리 아르크 성의 매끈한 벽이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높은 건물을 만들려고 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인물들은 바벨탑에 도전했고, 중세의 중앙아시아에서는 경쟁하듯이 첨탑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제 2롯데월드니 뭐니 해서 수백미터에 이르는 건물들을 구상하고 있다.
바벨탑이야 하늘에 도달하고 싶은 단순무식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지역의 첨탑들은 이곳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일종의 등대역할을 했다. 물론 군사적 목적의 감시탑으로도 이용했지만.
사람들이 '높이'를 추구하는 이유는 무얼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은 욕구, 그리고 위로 올라가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크고 높은 건물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월감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높고 커다란 것에 압도당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런 건축물이 자신의 영역에 있다면,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 또는 노리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경고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를 봐라, 우리한테는 이따만한 건물이 있다, 그러니 우리한테는 그만큼의 힘도 있지 않겠냐?
구시가지에서 생맥주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