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우르겐치 가는 길
김준희
몇 년 전 여름 몽골을 여행할 당시, 특이한 여학생을 한 명 만난 적이 있다. 미국에서 온 여대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를 만난 장소는 몽골 남쪽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앞에 위치한 캠프장이었다. 말이 캠프장이지 그곳에는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몇 채가 서 있을 뿐,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여행자들은 그곳에 하루 이틀 머물면서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에 다녀오는 것이 일과다.
그 여학생은 3개월 비자를 받아와서 캠프장에 머물고 있었다. 그 기간동안 일종의 자원봉사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는 게르 안에서 잠을 자는데, 여행자들이 많이 몰리면 침낭 하나만 들고 모래밭으로 쫓겨나야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났던 날도 그랬다. 이른 아침, 게르 밖으로 나왔을 때 캠프장 한쪽의 침낭에 들어가 있는 그녀를 보았다. 밤에 바람이 불면 그대로 맞아야 하고, 어떤 절지동물이 침낭으로 들어올지도 알 수 없다.
제대로 씻기는커녕 식수조차도 풍부하지 못한 곳이다. 모래먼지를 뒤집어쓴 침낭 속에서 얼굴만 밖으로 내민 채 그녀는 활짝 웃으며 '여기가 참 좋다'라고 말했다. 이름도 얼굴도 정확히 생각 안 나지만 그 웃음만큼은 지금도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난 그녀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구체적으로 뭐가 대단한지는 모르겠다. 그냥 남들이 하지 않는 일, 남들이 꺼리는 일을 자청해서 한다는 것이 그런 감정을 갖게 한 것 같다.
난 그 여학생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라고 묻고 싶었다. 그렇게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지 궁금하다. 몽골이 좋고, 사막이 좋아서, 바쁘고 복잡한 도시를 떠나서 한가롭고 심심한 대자연에 푹 파묻혀있는 시간들이 좋아서 그런다고 대답했을까.
도보여행을 시작한 지 오늘로 4일째, 거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버스도 많은데 왜 걸어가느냐?"라고 묻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거 끝내고 한국 가면 누가 돈 줘?"라고 묻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러시아 단어를 총동원해도 이들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 아니 말이 통하더라도 딱히 내놓을 답은 없다. '그냥 이렇게 걷고 싶어서' 정도가 될 것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이 있어서 간다'라고 말하던가. 나도 마찬가지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막이 있으니까, 길이 있으니까, 그 길이 고대의 실크로드니까, 나도 그 길을 따라서 걷고 싶은 것 뿐이다. 오래 전 이 길을 걸었던 상인들이 길 위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지, 당나라 군대를 이끌던 고선지 장군은 어떤 야망을 품었을지, 걷다보면 나도 조금씩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혼자 가는 길 위에서는 모든 상상이 자유로운 법이다.
호텔에 가서 씻고 싶은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