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서 보이는숭의동 109번지 언덕골목에서도 야구장 큰 등불이 잘 보였습니다. 그저 먼발치에서 소리만 듣고도 지금 전적이 어떠한가를 읽어내곤 했습니다.
최종규
1994년 가을. 늘 꼴찌 둘레에서 허덕이는 인천 야구단 '태평양 돌핀스'는 1989년에 이어 '두 번째로' 플레이오프를 치렀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꺾고 올라온 한화 이글스를 3전 전승으로 이기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나갑니다. 마지막 상대 타자를 잡고 선수들이 서로 달려들어 부둥켜안을 때에는, 경기장에서 지켜보던 저나 둘레 사람들이나 코끝이 찡하고 눈에는 눈물이 맺히면서 '연안부두' 노래를 부르며 축하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LG트윈스한테 4연패로 그지없이 밟히면서 무너졌지만, 3경기와 4경기는 조금도 질 경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질 수밖에 없는 경기였는지 모릅니다. 처음으로 큰 무대에 선 선수들이었기에, 언제나 들러리에 서서 멀거니 구경만 하며 손가락을 빨던 선수들이었기에, 투수 정민태와 정명원이 상대 타자 서용빈, 김재현, 유지현을 꽁꽁 틀어막고 있었음에도, 내야수가 두 차례 잇달아 실책을, 더구나 이틀 내리 같은 회에 같은 실책을 저지르면서 스스로 힘이 빠지니, 뒷 타자한테 뻥뻥 얻어맞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9회말까지 뒤집기는커녕 따라갈 낌새조차 없었지만, 경기장에 빼곡히 들어차서 내내 앉지 못하고 서서 응원하던 많은 사람들은 '(LG가) 한 번쯤 져주면 안 돼?' 하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1998년 가을. 인천 연고 야구단으로 태평양을 이은 현대 유니콘스는 4년 전 돌핀스를 짓밟았던 LG트윈스를 맞이해 짜릿하게 우승컵을 듭니다. 서울에서 신문딸배를 하며 살던 무렵이라 경기장에 가지는 못하고, 어두컴컴한 지국에서 숨죽이며 경기를 지켜보다가 "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다 "만세!" 하고 외쳤습니다. 삼미 슈퍼즈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에 이은 네 번째 이름, '현대 유니콘스'에 이르러, 인천 야구 즐김이는 처음으로 어깨를 펴고 '우리 인천도 (프로야구에서) 우승을 했다구!' 하면서 고개를 들게 됩니다.
그러나 눈물콧물과 웃음기쁨을 번갈아 베풀던 인천 야구단은, 현대 모기업이 야구단을 서울로 끌어올려 더 많은 관중을 끌어들이려는 꿈을 꾸면서 떠돌이 신세가 됩니다. 처음으로 어깨펴기를 선물해 준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을 버리고 수원을 거쳐서 서울로 가겠다고 외치는 한편, 전주에 뿌리를 둔 쌍방울 레이더스를 SK가 거두어들이면서 인천으로 연고를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