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헌책방 〈삼선서림〉 사진 494장 : 찾아다니는 헌책방마다 다 다르게 보여주는 모습과 다 다르게 느껴지는 삶을 사진책 하나씩 따로따로 묶어내어, 언젠가 그 헌책방 일꾼한테 선물로 바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사진으로 담습니다. 서울 삼선교에 자리한 헌책방 〈삼선서림〉도 아저씨가 꿋꿋하게 버티어 주고 늘 즐겁게 일하여 주기를 바라면서 꾸준히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으로 엮는 이야기책이 되자면, 제 깜냥으로 보았을 때, 열 해라는 세월과 천 장이라는 사진은 되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정 안 되더라도 다섯 해 세월에 오백 장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뿌리서점〉, 〈숨어있는 책〉, 〈대양서점〉, 〈골목책방〉, 〈아벨서점〉, 〈신고서점〉, 〈책나라〉, 〈정은서점〉, 〈온고당〉, 〈책방 진호〉, 〈공씨책방〉에 이어 〈삼선서림〉도 곧 500장 넘게 찍은 헌책방에 들게 됩니다. 비록, 날이 갈수록 살림이 쪼들리고 헌책방 나들이를 좀처럼 자주 떠나지는 못하지만, 돈이 없다고 해서 책을 안 사 읽지도 않고, 돈에 허덕인다고 필름 장만을 안 하지도 않기에, 한 장 두 장 모이는 사진과 한 권 두 권 읽게 되는 책을 쓰다듬으면서, 살아가는 맛을 느낍니다.
헌책방 〈삼선서림〉을 처음 찾아간 2001년 3월부터 헤아려 보면(이무렵 책방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찍은 사진은 빛이나 사진틀이나 적이 어수룩합니다. 두 번째 찾아가서 찍을 때, 세 번 네 번 찾아가서 찍을 때는 조금 나아지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느덧 열 번을 넘기니 ‘이거다’ 하는 사진이 몇 장 보이고, 쉰 번을 넘기니 웬만한 사진은 찍는 대로 마음에 찹니다.
그렇지만, 〈삼선서림〉은 백 번 넘게 찾아가지 못하고 맙니다. 더는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하게 됩니다. 백 번 넘게 찾아가서 사진으로 담은 헌책방으로 제 가슴에 남으면, 이곳에서 찍는 사진은 찍는 그대로 제 눈에는 예술로 보이고 삶 한자락이 뚝뚝 묻어난다고 느껴지지만, 백 번 찾아가기도, 열 해 동안 천 장 찍기도 이루지 못합니다. 〈삼선서림〉은 2007년 2월에 문을 닫고 말아, 끝내 이곳 사진은 500장조차 넘기지 못합니다. 494장에서 끝납니다.
[137] 사진책 사기 : 사진책 한 권은 헌책으로 사도 주머니가 금세 홀쭉해진다. 새책방에서 사진책 고를 때에도 늘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이 책 저 책 꼼꼼하게 견준 다음 고르는데, 헌책방에서라고 다르지 않다. 값이 조금 눅은 사진책이 더러 있으나, 나라밖 사진책은 으레 여러 만 원을 치르지 않으면 내 품에 안을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 망설이면서까지, 주머니 털림을 겪으면서까지, 꾸준히 사진책을 사게 되는 까닭이 있다면, 글책보다 만나기 힘든 탓도 있지만, 사진책은 몇 번씩 다시 보기 때문이다. 적어도 열 번은 되넘기고 백 번을 더 훑기도 한다. 다시 읽을 때마다 마음을 뭉클하게 건드리는 좋은 글이 있듯, 볼 때마다 새삼스러움을 선물해 주는 사진이 많다. 처음에는 뭐 이런 사진이 다 있나, 생각하게 하는 사진책도 있지만, 책 하나로 묶어내는 사진임을 곱씹으면서 가만히 다시 넘기거나 몇 해 지나 다시 넘기면, 저마다 책으로 묶어낼 값과 뜻이 찬찬히 느껴지곤 한다. 주머니가 짐스러워도, 아니 주머니는 홀쭉해지고 가방은 무거워져도 사진책은 자꾸 사고 또 사들이고 거듭 장만하게 된다.
[138] 건전지 : 건전지가 다 닳아 사진을 못 찍다. 미처 하나 넉넉히 마련해 놓지 못한 바람에. 기계 사진기 하나와 전자식 사진기 하나를 쓰는데, 흑백필름 찍는 전자식 사진기는 건전지가 닳으면 안 움직인다. 기계식은 약이 다 되어도 완전수동으로 놓고 찍으면 되는데 전자식은 이렇게 못한다. 이리하여 찍어야 할 사진, 오늘 찾아간 헌책방에서 담을 사진을 못 찍고 못 담는다. 마음이 무겁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이내 아쉬움을 접고 사진기를 가방에 집어넣는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오늘은 필름이 아닌 내 눈과 마음과 머리에 헌책방 모습과 삶을 담자고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20 14:5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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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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