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대교와 울돌목, 오른쪽 다리 왼쪽편 움푹 들어간 곳이 '명량리'이며, 그 뒤 크게 움푹 들어간 바다에 접한 마을이 임진왜란 당시 우수영이 있었던 곳으로 마을 이름도 '우수영'이다.
김준
조선사람은 호랑이가 무섭고, 왜놈은 '우~'가 무섭다?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지만 그 시대를 만드는 것은 민초라 했다. 민초들의 도움이 없이 울돌목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물길 아는 토착지식을 갖춘 해남과 진도, 그리고 인근 지역 갯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말이 도움이지 강제였을 것이다.
사지에 나설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고기잡이 배를 끌고 나와 수군으로 위장하고, 강강술래와 노적봉으로 군사력을 과시한 것도 전략이었다. 진도여자들은 바닷가 언덕에 모여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했다.
해남에는 전라우수영이 있고, 진도에는 벽파진이 있다. 그 사이에 흐르는 물이 바닷길을 엮고 푸는 울돌목이다. 우수영에서 만난 정장석(78)씨. 나이에 비해 건장한 체격에 용모가 반듯하다. 마을에 남아 있는 우수영 흔적이라며 성터, 영창, 망재를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