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짜리 아기아기한테 천 기저귀를 쓰니, 빨래감이 장난이 아닙니다만,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모두 이렇게 아기를 키우셨고, 우리도 이처럼 아기를 키울 뿐이기에, 즐겁고 달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최종규
아기가 8월 16일에 태어났습니다. 한가위 명절인 오늘은 9월 14일. 한 달이 서른 날이기도 하고 서른한 날이기도 하니, 오늘은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는 갓 태어난 아기, 갓난아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명절에 어디로 가지 못합니다. 아니, 가려고 해도 갈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옆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전거는 잘 타지만, 제 자전거 짐수레에는 아이만 둘 태울 수 있지 어른은 태울 수 없습니다.
옆지기만 시외버스를 타고 부모님 댁에 찾아갈 수 있을 터이나, 옆지기는 집이 아닌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서 회음부를 자르는 바람에 몸이 많이 다치고 아파서 자리에 앉지도 못합니다.
서기는 하되 걷기도 힘들고 앉기도 힘든데 시외버스에서 자리를 얻어 앉는다고 하여도 두 시간 넘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제가 자가용을 몰 줄 알고, 자가용을 끌고 간다고 해도 못 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세 식구는 한가위 명절을 우리 살림집에서 조용하게 보냅니다. 집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않고 사니까 텔레비전을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집에 텔레비전이 있었다 한들 들여다볼 틈이 없습니다. 아기를 낳아 길러 본 분이라면 누구나 알 테지만, 갓난아기를 돌보는 데에는 하루 스물네 시간 꼬박 옆에 붙어서 아기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어디 텔레비전에 눈이 갑니까. 더구나, 갓난아기한테 텔레비전 전자파를 쏘이게 하면 안 되지요.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어야 하는 아기는, 시간마다 옆지기와 나란히 누워서 젖을 빱니다. 이동안 저는 씻는방에서 아기 기저귀와 옆지기 기저귀와 우리 옷가지를 빱니다. 오늘은 아기와 옆지기가 덮는 담요까지 석 장 빨아냅니다.
손빨래는 제가 혼자 살림을 하던 1995년부터 이제까지 줄곧 이어왔습니다. 여태껏 모든 빨래는 손빨래로 너끈히 해냈고 이불빨래든 뭐든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기 기저귀 빨래 앞에서는 두 손을 듭니다.
청바지를 한 날에 여러 장 빨았어도, 추운 겨울날 군대에서 얼음물로 야상을 빨았어도 아프지 않던 손바닥이요 손가락인데, 기저귀 빨래 한 달 만에 손가락 마디마디 저리지 않은 데가 없고, 팔뚝과 어깨죽지까지 몹시 결립니다. 씻는방 바닥에서 비빔질을 하는데 이거야 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억지로 억지로, 온몸을 던져서 겨우 비빕니다.
엊그제부터 손가락이 다시 아픕니다. 기저귀 빨래 며칠 만에 손가락과 손바닥이 아프더니 새 굳은살이 돋았는데, 이번에는 세 번째로 아픔이 찾아오면서 세 번째로 새로운 굳은살이 손가락 마디마디와 손바닥에 배입니다. 맨손으로 온갖 일을 하고, 책을 수만 권 나르고, 자전거를 열 몇 시간을 타면서도 이렇게까지 굳은살이 박인 적이 없습니다.
신문딸배를 하면서도 이렇게 굳은살이 박이지 않았습니다. 새 목숨을 부여받고 태어난 아기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지아비한테 이런 어마어마한 빨래감을 선사하면서 ‘여태까지 해 온 빨래는 웃음거리밖에 아녀라. 내 기저귀 빨래쯤 치러내야 참 빨래지’ 하고 깨우쳐 주는 듯합니다.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