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15일 오전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창기
그렇다면 현재를 기준으로 같은 조사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도 서울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을 갱신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지표들과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우선 <경향신문>(3일자)과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종교정책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58.9%가 '편향적'이라고 평가한 반면에 '편향적이지 않다'는 응답은 15.4%에 불과했다. 국민의 대다수가 '이명박 정부가 종교편향 행위를 하고 있다'는 불교계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또 한승수 총리 및 15개 부처 장·차관의 종교를 조사한 <한국일보> 2일자에 따르면, 전체 39명 중 기독교(개신교) 신자는 13명으로 33.3%를 차지한 반면 불교 신자는 2명(5.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천주교 신자는 9명으로 23.1%, 종교가 없는 사람은 15명(38.5%)이었다.
이에 비해 통계청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4704만여명 중 불교 신자가 22.8%, 기독교 18.3%, 천주교 10.9%, 원불교 0.3% 등의 순이었다. 일반 국민의 종교는 불교가 가장 많은데도 정책을 입안·집행하는 정부의 고위직에는 불교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이 대통령이 장·차관의 종교가 무엇인지까지 따져서 인선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개각 초기 '고소영 내각'이라는 비판에서 보듯, 불교계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부터 '서울시 봉헌' 등 수많은 종교 편향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이렇다 보니 정치·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 기능을 가진 종교가 오히려 갈등과 반목을 증폭시키는 '종교간 균열'이 위험 수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향신문-EAI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개신교 신자는 45%가 잘하고 있다고 답한 반면, 불교 신자는 33.3%, 가톨릭 신자는 29%, 무종교는 26.2%만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이명박 정부의 종교정책에 대해서는 불교 신자의 72%, 가톨릭 신자의 62%가 '편향적'이라고 본 반면 개신교 신자는 40%만이 '편향적'이라고 답변해 종교별로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인식 차이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불교·기독교·천주교 등 각계 종교인과 종교학자 등으로 구성된 '한국종교간대화학회'는 3일 "최근 불교계에서 잇따라 종교차별에 반발하는 등 종교간 갈등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악의 위기상황에 놓여있다"고 평가하고 대책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불상과 단군상 훼손 등으로 물밑에서는 종교간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종교간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면화된 적은 없었다는 것이 이 학술단체의 진단이다.
스님 경고했지만 이 대통령에겐 '쇠귀에 경읽기'이같은 '종교간 균열'의 원인 제공자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서울시 봉헌' 발언 등으로 불교계의 깊은 우려를 샀으면서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여전히 불교계의 근심을 살 만한 언행을 계속해 왔다.
이른바 고소영 내각 등 정부 요직의 기독교 편중인사 논란(2월)을 시작으로, 김성이 장관 후보자의 '양극화는 신앙심이 부족한 탓'이라는 기고 논란 및 뉴라이트 김진홍 목사와 청와대 예배(3월), 청와대, 정무직공무원 종교조사 실시로 물의(4월), 이 대통령 조찬기도회 참석으로 '불교 홀대' 논란(5월), 국토해양부, '알고가' 교통정보에 교회·성당만 표기, 사찰 누락 및 '제4회 전국경찰복음화금식대성회' 광고 포스터에 어청수 경찰청장 사진 게재(6월) 등으로 이어졌다.
오죽했으면 서울 강남의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지난 6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종교색깔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극렬하게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면서 "불자들은 해방 이후 최악의 대통령을 만났다"고 일갈했을까 싶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이때 이미 명진 스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러나 그뒤에 벌어진 이명박 정부와 대통령의 언행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불교계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7월에는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차량을 검문·검색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 지난 6월의 국토해양부 교통정보 누락 지적에도 불구하고 8월에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지리정보서비스 학교현황 서비스에 교회는 아이콘으로 상세히 표시된 반면에, 조계사와 봉은사 등 전통사찰과 대형사찰 정보가 누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모든 것이 이 대통령이 불교계를 고의로 자극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행은 알게 모르게 혹은 '이심전심'으로 공직자들의 언행과 종교정책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최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범불교도대회'가 열린 다음날 보란 듯이 김진홍 목사 등 뉴라이트 회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함께 함으로써 오히려 불교계 민심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