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다리헌책방이라는 곳을, 우리들은 몸으로 겪어 보지 않고 겉핥기로만 대충 이야기하면서, 정작 헌책방에 깃든 멋과 맛을 모두 놓치고 있다고 느낍니다.
최종규
헌책방에 갑니다. 등에는 가방, 손에는 사진기를 들고 헌책방에 갑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난해까지는 혼자서 가던 헌책방이고, 지난해부터는 옆지기하고 함께 찾아가는 헌책방입니다. 혼자서 헌책방을 찾아가던 때에는 예닐곱 시간씩 온 골목을 거닐며 책방 마실을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여러 시간씩 이 동네 저 동네로 옮겨다니며 책방 마실을 하기도 했습니다.
둘이서 헌책방을 찾아가는 지금,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다른 책을 살펴봅니다. 제가 고른 책을 옆지기가 더듬어 보고, 옆지기가 고른 책을 제가 더듬어 봅니다. 이런 책을 이렇게 찾아서 읽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내가 바라거나 좋아하는 책은 얼마나 내 둘레 사람들한테도 건네줄 만한가를 곱씹습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삽니다. 헌책방이니 ‘헌책’을 사는데, ‘헌’책이라서 ‘새’책과 견주어 값이 쌀 때가 있으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세월 때를 먹은 책은, 이 책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서 다른 값이 매겨집니다. 열 해를 먹은 책은 열 해에 따른 값을, 스무 해를 먹은 책은 스무 해에 따른 값을, 쉰 해를 먹은 책은 쉰 해에 따른 값을 받습니다.
이냥저냥 읽어치우는 책이 아니라, 쉰 해가 지났음에도 읽을 만한 책을 만나는 헌책방입니다. 값싸게 사들이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 처음 손길을 내밀었던 책을 옛임자 손때를 느끼며 만나는 헌책방입니다. 때로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 하는 책을 눅은 값에 사는 헌책방이고, 때로는 판이 끊어지거나 묻혀져 버린 보물을 캐내는 헌책방이며, 때로는 우리 세상이 흘러온 발자취를 곱씹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반갑게 마주하는 헌책방입니다.
첫 아이가 입은 옷을 둘째가 물려서 입듯, 둘째가 입은 옷을 이웃집 아이가 물려서 입듯, 헌책방 헌책은 여러 사람을 돌고 돌면서 읽힙니다. 새책방 새책은 오로지 한 사람한테만 읽히고 책꽂이에 꽂히지만, 헌책방 헌책은 ‘적어도 네 사람’ 손길을 탑니다. 맨 먼저 이 책을 알아보고 산 사람, 이 책이 버려진 뒤 건져낸 샛장수, 샛장수한테서 이 책을 사들이는 헌책방 일꾼, 그리고 헌책방을 찾아가는 책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