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지나갔다, 부침개 먹으러 시장 가자

[맛이 있는 풍경 45] 광장시장에 가면 혀가 세번 까무러친다

등록 2008.08.26 14:46수정 2008.08.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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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이 정부 들어 다들 먹고 살기 힘든가 봐
광장시장이 정부 들어 다들 먹고 살기 힘든가 봐이종찬

내 모습 얄궂다고 비아냥거리지 마라
너는 못 생긴 게 맛이 좋다는 CF도 보지 못했느냐
갈바람 시청 앞 촛불로 깜빡이는 저물녘
전경들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하늘마저 우는 밤
막걸리 한 모금 마신 뒤 입술로 날 안아보라
바삭바삭 부서지며 스르르 휘감기는 내 몸
고소하고 달착지근하게 하나가 되는 네 혀
나는 청와대에서 홍보용으로 시식하는 미친 쇠고기가 아니라
나폴리 장사치들이 먹었던 물컹한 피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피눈물 꼭꼭 다져넣은 부침개이니라


-이소리, '부침개' 모두 

선선한 가을바람이 이마와 목덜미를 스칠 때면 광장시장으로 가자.

이명박 정부가 낳은 3중고, '고유가·고물가·고금리'로 시름에 젖어들 때, 무언가 배불리 먹고싶은데 주머니가 짤랑거릴 때 광장시장으로 가자. 이 세상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핑핑 잘 돌아가는데 나만 홀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 광장시장으로 가자.

가을바람 애인처럼 옆구리에 끼고 지하철 1호선 동대문행을 타고 가다 종로5가 8번 출구로 나서면 거기 민초들이 아웅다웅 살갑게 살아가는 세상이 보인다.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 바삭바삭 부서지며 고소하게 혀를 까무러치게 하는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 마셔보자. 온갖 시름이 '걸음아 날 살려라' 혀빼물고 내빼리라.

'대한민국 피자' 부침개과 '대한민국 와인' 막걸리. 돈 걱정 별로 하지 않고 즐겨먹는 음식 중 이보다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 또 있을까.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들선들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막걸리 한 잔에 갓 부쳐낸 부침개가 그리운 계절이 돌아왔다.


부침개는 예로부터 신분·직위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기는 우리나라 특산품이다. 우리나라 전통음식은 예로부터 튀기거나 볶는 음식이 드물고 부치거나 삶는 음식이 많았다. 이는 기름이 귀했기 때문이다.

그 중 부침개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피자를 더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대부분 피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부침개에 비해 피자는 느끼하기 때문이다. 


광장시장 그 광장시장에 들어서서 왼 편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왁자지껄 몰려 앉아 마치 잔칫집 분위기가 나는 곳이 있다
광장시장그 광장시장에 들어서서 왼 편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왁자지껄 몰려 앉아 마치 잔칫집 분위기가 나는 곳이 있다이종찬

광장시장 이 부침개집 길고 좁은 간이의자에 앉으면 금세 고소한 내음을 풍기는 부침개와 튀김에게 사로잡힌 포로가 된다
광장시장이 부침개집 길고 좁은 간이의자에 앉으면 금세 고소한 내음을 풍기는 부침개와 튀김에게 사로잡힌 포로가 된다이종찬

300원짜리 부침개 먹고 호박전·고구마전 덤으로 먹던 시절

1987년 이맘 때였을까. 길라잡이(나)는 문학운동단체 총무간사를 맡고 있었다. 그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집회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물론 문화6단체 회의, 연행 구속 문인 성명서 발표, 철야농성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식사도 하루 점심 한 끼 먹으면 잘 먹었다고 여겨야 할 때였다.

까닭에 늘상 배가 고팠다. 나이 또한 한창 새파란 20대 후반에다 여기저기 열심히 뛰어다니다보니 세 끼를 꼬박 챙겨 먹어도 허기가 질 때였다. 하지만 너무 얇았다. 운동단체 일이란 게 일종의 노력봉사를 담보로 하는 것이어서 월급이 아주 적었다. 아니, 월급이 아니라 활동비라고 보는 게 더 맞는 말이다.

그 때 자주 찾은 곳이 아현시장 부침개 골목이었다. 그 부침개집은 칠순 할머니가 파전·부추전·감자전·호박전 등을 즉석에서 부쳐 막걸리와 함께 팔고 있었다. 길라잡이는 저녁 무렵 배가 슬슬 고파오기 시작하면 그 부침개집에 가서 300원짜리 부침개 3장에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켜 먹었다. 그렇게 막걸리 한 주전자에 고소하면서도 감칠 맛 깊은 부침개 몇 장 먹고 나면 배가 든든했다.

이마에 굵은 주름이 부추전을 닮았던 그 할머니는 인심도 참 좋았다. 부침개를 다 먹어갈 때 즈음이면 호박전과 고구마전 등을 덤으로 접시에 수북이 얹어주었다. "총각이 배가 얼마나 고팠으면 막걸리 한 주전자와 부침개 세 장을 눈 깜빡할 새 다 먹느냐"라며.

광장시장 이 집 특징은 부추전 파전 녹두전 감자전 고구마전 두부전 고기전 고추튀김 등 여러 가지 부침개(1접시 1만 원)를 섞어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내는 할머니 큰 손이다
광장시장이 집 특징은 부추전 파전 녹두전 감자전 고구마전 두부전 고기전 고추튀김 등 여러 가지 부침개(1접시 1만 원)를 섞어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내는 할머니 큰 손이다이종찬

부추전 시원한 막걸리 한 잔 꿀꺽꿀꺽 비운 뒤 부추전을 입에 물자 향긋한 부추향과 함께 바삭바삭 부서지는 고소한 감칠맛이 혀를 까무러치게 한다
부추전시원한 막걸리 한 잔 꿀꺽꿀꺽 비운 뒤 부추전을 입에 물자 향긋한 부추향과 함께 바삭바삭 부서지는 고소한 감칠맛이 혀를 까무러치게 한다이종찬

앉는 순간 부침개에게 사로잡힌 포로가 된다

서울에서 부침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광장시장이다. 그렇다고 광장시장에 부침개만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 시장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값도 싸고, 품질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거지가 돈 5만원 들고 광장시장을 한 바퀴 휘이 둘러나오면 번지르르한 신사가 된다는 말까지 떠돌겠는가.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광장시장(1904~). 1904년 고종 41년 '을사조약' 뒤 남대문시장 경영권을 장악한 일제에 맞서 김종한 외 3명이 각각 현금 10만 원을 내 만들었다는, 민족 자주경제가 움튼 광장시장. 지금은 서울을 찾는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반드시 한 번쯤 들러 간다는, 국제적으로도 이름 높은 광장시장.

그 광장시장에 들어서서 왼편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왁자지껄 몰려 앉아 마치 잔칫집 분위기가 나는 곳이 있다. 이곳이 빈대떡·파전·부추전·호박전·고구마전·두부전·고기전·고추튀김 등이 수북이 쌓여있는, 광장시장이 자랑하는 부침개 골목이다.

그 중 가장 눈에 띠는 집이 커다란 쟁반 크기의 빈대떡을 구워내는 집 맞은편에 자리잡은 부침개집이다. 한 평을 넘을락 말락 할까. 이 부침개집 길고 좁은 간이의자에 앉으면 금세 고소한 내음을 풍기는 부침개와 튀김에게 사로잡힌 포로가 된다.

전북 부안이 고향이라는 육십 대 중반 남짓한 이 집 할머니는 "요새는 손님이 많이 줄었어"라며 한숨을 포옥 내쉰다. 그냥 '부안댁'이라고 불러달라는 할머니의 짤막한 말 한 마디가 몹시 서글프게 다가와 가슴을 툭 친다. 

부침개 손님이 부침개를 따로 시킬 때만 빼놓고, 그저 자리에 앉기만 하면 묻지도 않고 막걸리 한 주전자와 함께 부침개 한 접시를 낸다
부침개손님이 부침개를 따로 시킬 때만 빼놓고, 그저 자리에 앉기만 하면 묻지도 않고 막걸리 한 주전자와 함께 부침개 한 접시를 낸다이종찬

막걸리 막걸리 한 주전자와 부침개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나자 배가 든든해진다
막걸리막걸리 한 주전자와 부침개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나자 배가 든든해진다이종찬

주문 안 해도 부침개에 막걸리 척척척

"이 정부 들어 다들 먹고 살기 힘든가 봐. 이렇게 값싼 부침개조차도 마음 놓고 사먹을 형편이 못되는 것 같으니…. 식기 전에 어여 먹어. 우리집은 모든 재료를 국산만 써. 그랑게 걱정 말고 많이들 먹어. 부침개는 금방 부쳐냈을 때가 파삭파삭 씹히는 게 가장 맛이 좋아. 막걸리도 마셔야지? 부침개는 뭐니뭐니 해도 막걸리가 찰떡궁합이지."

이 집 특징은 부추전·파전·녹두전·감자전·고구마전·두부전·고기전·고추튀김 등 여러 가지 부침개(1접시 1만원)를 섞어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내는 할머니 큰손이다. 그리고 손님이 부침개를 따로 시킬 때만 빼놓고, 그저 자리에 앉기만 하면 묻지도 않고 막걸리 한 주전자와 함께 부침개 한 접시를 낸다.  

8월 초, 맛객 김용철과 같이 간 날도 그랬다. 그날 저녁 6시께 맛객과 함께 그 부침개집에 들렀을 때에도 할머니는 묻지도 않고 부침개 여러 가지를 그 자리에서 지글지글 부쳐 쟁반 가득 내놓았다. 물론 막걸리 한 주전자도 빠뜨리지 않았다. "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 해"라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맛객과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 꿀꺽꿀꺽 비운 뒤 부추전을 입에 물자 향긋한 부추향과 함께 바삭바삭 부서지는 고소한 감칠맛이 혀를 까무러치게 한다. 막걸리 한 잔 더 먹고 노릇노릇한 고구마전을 입에 물자 고소한 기름향과 함께 군밤처럼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맛이 혀를 또 한 번 까무러치게 만든다. 막걸리 한 잔 더 쭈욱 들이킨 뒤 길쭉한 고추튀김을 입에 물자 매콤하면서도 향긋한 고추 맛이 혀를 세 번 까무러치게 만든다.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맛이 나는 감자전, 홍합·굴·쇠고기 위에 어슷어슷 썬 붉은 고추가 꽃처럼 피어난 파전, 노릇노릇 구워낸 두부전 등을 깨소금 뿌린 간장에 찍어먹는 맛도 별미 중 별미다.      

막걸리와 부침개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맛이 나는 감자전, 홍합 굴 쇠고기 위에 어슷어슷 썬 붉은 고추가 꽃처럼 피어난 파전, 노릇노릇 구워낸 두부전
막걸리와 부침개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맛이 나는 감자전, 홍합 굴 쇠고기 위에 어슷어슷 썬 붉은 고추가 꽃처럼 피어난 파전, 노릇노릇 구워낸 두부전이종찬

현장의 맛을 노트북에 담는다

그렇게 막걸리 한 주전자와 부침개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나자 배가 든든해진다. 그때 할머니가 빈 접시에 마악 부치고 있던 부침개를 덤으로 푸짐하게 얹어준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시킨 뒤 맛객의 빈 잔에 마악 부어주려는데, 맛객이 노트북을 꺼낸다. "현장에서 기사를 쓰려구요?" 하자 "현장의 맛을 노트북에 담아야죠"라며 빙그시 웃는다.

그즈음 일본 여성 둘 옆자리에 앉는다. 할머니가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고 있는 부침개를 손짓하자 둘 다 고개를 끄덕한다. 맛객이 말을 붙인다. 일본 여성들은 까르르 웃으며 뭐라뭐라 쫑알댄다. 맛객이 "한국에 오면 이 곳에 꼭 들러보고 싶었다고 그러네요, 한국 부침개가 참 고소하고 맛있다고 그래요"라고 번역한다.

맛객의 일본어 솜씨 또한 최고다. 맛객 김용철씨는 "부침개가 생각날 때마다 이 집을 찾는다"고 말한다. 맛객은 "이 집 부침개의 참맛은 아무리 먹어도 느끼하거나 물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며 "전국 부침개를 다 먹어 보았지만 이 집처럼 깊은 감칠맛이 나는 집은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요즈음 '외국산 부침개' 피자에 밀려 우리 부침개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피자보다 우리 부침개가 입에 더 잘 맞는다고 한다. 왜일까. 이는 외국 것만 사족을 못 쓰는 일부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은 아닐까. 그래. 갈바람 부는 오늘 저녁은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 어떨까.

맛객 김용철 "현장에서 기사를 쓰려구요?"하자 "현장의 맛을 노트북에 담아야죠"라며 빙그시 웃는다
맛객 김용철"현장에서 기사를 쓰려구요?"하자 "현장의 맛을 노트북에 담아야죠"라며 빙그시 웃는다이종찬

#광장시장 #부침개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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