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5) 시체(時體)말

[우리 말에 마음쓰기 393] ‘장시(長詩)’는 무엇이고, ‘사원(寺院)’은 무엇인가

등록 2008.08.04 14:42수정 2008.08.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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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시체(時體)말

.. 그때의 길들은 나에게는 마당이요, 놀이터요, 시체(時體)말로 거실이요, 휴식의 처소요, 나의 몸의 크기와 살갗에 알맞는 주위 공간이었다 ..  <김수근-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공간사,1989) 103쪽


‘마루’보다는 ‘거실(居室)’이라는 말이 두루 쓰입니다. ‘부엌’이라는 말이 밀려나고 ‘주방(廚房)’이 또아리를 틀듯,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내다 버리고 있습니다.

“휴식(休息)의 처소(處所)”는 ‘쉴 곳’으로 다듬습니다. “나의 몸의 크기”는 “내 몸크기”나 “내 몸”으로로 손질합니다.

 ┌ 시쳇말(時體-) : (주로 ‘시쳇말로’ 꼴로 쓰여) 그 시대에 유행하는 말
 │   - 시쳇말로 속도위반을 조금이라도 가리려고 그랬던 겁니다
 │
 ├ 시체(時體)말로 거실이요
 │→ 요샛말로 거실이요
 │→ 요즘 하는 말로 거실이요
 │→ 요즘 떠도는 말로 거실이요
 └ …

유행하는 말이라면 ‘유행말’이라 하면 됩니다. 괜히 ‘시쳇말’이라고 해서 사람 주검하고 헷갈리도록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유행(流行)말’도 뜻을 살피면 “떠도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뜻 그대로 “떠도는 말”이라 하면 알아보기에 한결 낫습니다. 떠도는 말이란 ‘옛날 옛적에 떠도는’ 말이 아닌, ‘요즘 세상에서 떠도는’ 말이니 “요즘 하는 말”로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ㄴ. 장시(長詩)


.. 이한직은 종국이 장시長詩에 적절한 인물로 본 듯 싶다 ..  <정운현-임종국 평전>(시대의창,2006) 170쪽

‘적절(適切)한’은 ‘알맞는’이나 ‘어울리는’으로 다듬습니다. ‘인물(人物)’은 ‘사람’으로 고쳐 줍니다.


 ┌ 장시(長詩) : 여러 개의 시구로 이루어진 긴 시
 │
 ├ 장시長詩에 적절한 인물
 │→ 긴시에 알맞는 사람
 │→ 긴시가 어울리는 사람
 │→ 긴시를 잘 쓸 만한 사람
 └ …

‘장시’라고만 적으면 헷갈릴까 봐 ‘長詩’라는 한자를 뒤에 붙였겠지요. 그런데, 이런 한자를 붙인다고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차라리 “장편 시”라고 하는 편이 낫지 싶은데. 그리고 ‘긴시’라고 하면 단출합니다. 소설도 ‘긴소설-짧은소설’로 나누면 되고요.

 ┌ 긴시 / 짧은시
 └ 긴소설 / 짧은소설

말을 어떻게 골라서 어느 자리에 쓰느냐를 잘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군더더기가 될 만한 붙임말인지, 붙임말 없이 훨씬 쉽고 단출한 말도 있는지 짚으면 더 좋겠습니다. 잘 헤아리느냐 못 헤아리느냐에 따라 말맛은 크게 달라집니다. 어떤 말을 붙이느냐에 따라서 듣거나 읽는 사람들한테 끼치는 영향도 다릅니다.

ㄷ. 사원(寺院)

.. 인디언들은 종교가 없으며 사원(寺院)도 갖고 있지 않다고 라스 카자스는 말한다 ..  <하워드 진/조선혜 옮김-미국민중저항사 (1)>(일월서각,1986) 12쪽

“사원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원도 없다”로 고쳐씁니다. 바로 앞에서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으며”가 아닌 “종교가 없으며”로 잘 썼는데, 이 말투를 그만 금세 잊고 말았는가 봅니다.

 ┌ 사원(寺院)
 │  (1) 종교의 교당을 통틀어 이르는 말
 │  (2) = 절
 │
 ├ 사원(寺院)도 갖고 있지 않다
 │→ 예배당도 없다
 │→ 절집도 없다
 └ …

알맞춤하게 쓸 만한 말이 무엇인가를 차근차근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 말로는 ‘절’이나 ‘절집’입니다. 보기글처럼 서양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며 찾아가는 곳을 가리킬 때에는 ‘예배당’으로 적어 주어도 됩니다. ‘교회’라는 말을 써도 됩니다. 때로는 ‘성당’이라고 할 수 있어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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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한자 #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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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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