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1)

― '너의 얼굴' 다듬기 (너의)

등록 2008.07.31 17:51수정 2008.07.3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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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얼굴이 이미 주름지고 머리털도 희었으니, 내가 먼저 너의 배운 것부터 들어 보자” ..  <의산문답>(홍대용/이숙경,김영호 옮김, 꿈이있는세상,2006) 32쪽

 

 “배운 것”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배움”으로 손질해도 됩니다. “무엇을 배웠는가부터”로 손질해도 어울립니다.

 

 ┌ 너의 얼굴이

 │→ 네 얼굴이

 │

 ├ 너의 배운 것부터

 │→ 네가 배운 것부터

 │→ 네가 무엇을 배웠는가부터

 │→ 네 배움부터

 └ …

 

 그렇지만, ‘네’나 ‘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너 + 의’이나 ‘나 + 의’ 말투를 쓰면 “무엇을 배웠는가부터”로 손질할 수 없습니다. “너의 무엇을 배웠는가부터”처럼 적으면 말이 안 되거든요.

 

 ┌ 나의 사랑하는 나라 (x)

 └ 내가 사랑하는 나라 (o)

 

 임자말을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서 글짜임이 달라지고, 글짜임이 달라지면서 뒷말이 달라집니다.

 

 ┌ 나의 하루

 └ 너의 하루

 

 그리고, 토씨 ‘-의’를 붙여서 “나의 하루”나 “너의 하루”처럼 적으면, 뜻이 두루뭉술해지고 맙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선뜻 드러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내 하루”인지 “네 하루”인지, “내가 보낸 하루”인지 “네가 보낸 하루”인지, 아니면 “내가 보낼 하루”인지 “네가 보낼 하루”인지, 또는 “내가 겪은 하루”인지 “네가 겪은 하루”인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 너의 배운 것부터

 │

 │→ 네가 이제까지 배운 것부터

 │→ 네가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가부터

 │→ 네가 이제껏 배워 온 여러 가지부터

 │→ 네가 여태껏 배우고 익힌 앎부터

 └ …

 

 말느낌 때문에 ‘나의’나 ‘너의’를 굳이 쓰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너의’로 적을 때와 ‘네’로 적을 때는 다르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못 쓰고 잘못 길든 말투 ‘너 + 의’였지만, 하루이틀 익숙해지고 사흘나흘 길드는 가운데, 이처럼 적는 잘못된 말투도 ‘우리 말 문화’ 가운데 하나인 듯 스며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어린이책에도 ‘나의’와 ‘너의’가 튀어나옵니다. 그림책이건 동화책이건 어렵지 않게 이 말투를 찾아봅니다. 더구나 초등학교부터 영어를 배우게 되면서, 아이들이 보는 영어사전이나 영어책이나 영어교재에도 ‘나의’와 ‘너의’가 수두룩하게 쓰입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분들은 우리 말씨나 말투나 말법을 거의 배우지 않으며, 거의 돌아보지 않습니다. 영어 지식을 아이들한테 심어 넣고는 있습니다만, 자기가 심어 넣는 영어를 한국말로 어떻게 새겨서 받아들이면 좋은가 하는 대목은 헤아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집”이 아닌 “나의 집”으로 배우고, “우리 학교”가 아닌 “나의 학교”로 익힙니다. “네 책상”과 “네 언니”가 아닌 “너의 책상”과 “너의 언니”로 배웁니다.

 

 이리하여, 제아무리 ‘내-제’로 적어야 올바르고 ‘나의-저의’로 적으면 그릇되었다고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한들, 어른이나 아이나 오래도록 박히고 굳어 가는 말투를 돌이킬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걱정이 되지만, 저 혼자한테만 걱정이고, 이 말투에 길들다못해 찌들고 뿌리내려 버린 수많은 사람들한테는 하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 아주 자연스럽고 마땅한 노릇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31 17:51ⓒ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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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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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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