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가방내 곁을 떠난 사진기가방. 전철에서 책을 읽다가 그만 놓고 내리며 잃어버린 사진기가방. 오른쪽 것. 전철역 직원한테 곧바로 연락해서 그 다음 역에서 찾아 달라고 했으나, 벌써 누군가 들고 튀었다고 해서 잃어버린 사진기가방.
최종규
[39] 값비싼 장비 : 2000년 1월, 날씨가 아주 춥고 매섭던 날,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은 두 장만 빼고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너무 추운 날씨에 사진기가 얼어붙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때까지 값싼 헌 사진기를 써 왔는데, 처음으로 ‘추위와 더위에도 견딜 수 있는 장비’가 있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추위를 무릅쓰고 어렵게 사진을 찍었는데 기계가 이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면 애써 찍은 사진은 아무 보람이 없거든요. 추위만이 아닙니다. 어떤 모습을 찍으려고 모진 애를 썼는데 그만 장비가 따라 주지 않아 눈물을 삼킬 때가 있습니다.
사진기와 함께 렌즈도 바꿉니다. 적금을 하나 깹니다. 그동안 쓰던 값싼 렌즈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애써 찍은 사진 질감이 떨어짐”을 느꼈기 때문에.
꼭 돈이 있어야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겠지요. 자기가 쓰는 장비에 맞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자기한테 50미리 표준렌즈 하나만 있다면 바로 그 50미리 표준렌즈로 보이는 세상을 담으면 됩니다. 28미리나 16미리 넓은각을 못 찍는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자기 사진을 찍어야지요.
자기한테 없는 렌즈로 찍으면 좋겠다 싶은 사진은 그 렌즈를 가지고 있는 사진쟁이가 찍으라고 하지요. 나 한 사람이 이 세상 모든 사진감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요. 우리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대로 우리 손에 쥔 사진 장비로 자기 사진을 찍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대로 온힘을 다해야 할 뿐입니다. 안경을 써야 하는 몸이면서 안경 없이 눈밝은 사람을 부러워한다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한테 있는 장비로서는 어딘가 모자라거나 어설프다고, 이대로는 고여서 썩는 물이 된다고 느껴진다면 새 장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새 장비를 갖추어서 새 눈길을 키우고 새 눈높이를 마련해야 합니다. 새 장비를 갖출 때까지는 부지런히 장비값을 모으고, 지금 쓰는 장비로 엮어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작품을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목표로 삼은 장비값이 마련되었을 때, 아쉬움 없이 예전 장비는 훌훌 털어내고 새 장비에 몸을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