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문.창덕궁의 서문으로 대소신료들이 드나들던 문이다. 현재는 출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정근
대궐이 뒤집어지고 도성이 발칵 뒤집혔다. 임금이 혼절했다니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전갈을 받은 종실과 대소신료들이 창덕궁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궐문을 지키고 있던 승지 구봉서가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표신을 휴대하지 않은 사람은 들여보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약방제조와 어의가 금호문 밖 땅에 앉아 있고 최명길을 비롯한 재상들이 차비문 밖에 앉아 있었으나 궐문은 열리지 않았다.
"전하! 정신을 놓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정신을 차리십시오."급히 침전으로 옮겨진 인조 머리맡에서 소원 조씨가 울부짖었으나 임금은 말이 없었다.
"지금 전하의 환우가 어떠하시냐?"옆자리를 지키던 의원 이형익에게 물었다, 당황한 낯빛이다. 하지만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누워있는 임금을 일어나게 하기 위하여 한 곳으로 모았던 기가 흩어지며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열담(熱痰)이 상승하여 급히 약방으로 하여금 죽력(竹瀝) 두 사발을 올리게 하였습니다.""죽력을 드시면 눈을 뜨실 수 있겠는가?"소원에게는 눈이 핵심이었다. 눈을 뜰 수 있느냐? 영원히 감아 버리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시간이 걸리실 것 입니다.""차도가 아니라 꼭 눈을 뜨셔야 한다."소원의 목소리는 꼭 눈을 뜨게 해달라는 애원이었다.
어의도 아닌 의원에게 마루타가 된 임금님이형익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인조가 기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으나 삼음교에 집중적으로 놓은 침이 마음에 걸렸다. 누워있는 임금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어나 앉아 있게 하라는 소원의 하명에 따라 부족하면 보(補)하고 넘치면 사(瀉)하라는 기본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삼음교에 놓는 침은 다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으나 자칫 잘못하면 하반신을 마비시켜 영원히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형익이었다. 그렇다고 지엄하신 옥체를 상대로 마루타 실험을 하고 있다는 소리는 목이 열 개라도 할 수 없었다.
임금이 쓰러져 혼수상태를 헤매고 있다는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궁궐 담장을 뛰어넘은 소문은 도성에 파다하게 퍼졌고 조선 팔도로 날아갔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산목숨 부지하기 위하여 칠패시장과 애오개 시장에 밀려든 백성들의 민심은 흉흉했다.
"차라리 죽어야지, 백성들 이렇게 못살게 해놓고 지눔들만 살면 뭐해?""맞어, 맞는 말이야. 쥐뿔도 없는 게 그놈의 명나란가 맹나란가만 붙잡고 대들었다가 나라는 거덜 내고 지금 뭐하는 것 인줄 모르겠어? 졌으면 졌다 하고 제 살 궁리를 하던지 허구헌날 선물 꾸러미 꿰어 바치며 서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으니 한심하다 한심혀.""그렇다고 임금님을 그렇게 욕하면 되나?""나랏님도 없는 자리에서는 욕한다고 그랬어. 잡아가려면 잡아 가래지. 하나도 안 무서워. 살기 폭폭 한데 순군옥 가막살이가 더 났지." "그러면 들어가 살지 왜 여기에서 장사하고 그런가?""들어가 살고 싶어도 심양에 잡혀간 마누라가 돌아와 날 못 찾을까봐 걱정돼서 그러네."전쟁으로 삶이 피폐 해진 백성들은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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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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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거덜낸 위인 "차라리 죽어야지, 살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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