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 남탑. 포로 매매시장이 있던 곳이다.
이정근
"포로 매매시장이 어디에 열린다 하더냐?""용골대 말로는 남탑 어름에 열린다고 하였습니다.""남탑이라면 여기에서 얼마 정도 되느냐?""3천보쯤 됩니다.""냉큼 차비를 놓거라. 내 그리로 나가보아야 하겠다."갑자기 동관이 부산스러워졌다. 아무리 이국 땅 볼모생활이라 하지만 세자 차비는 간단치가 않다. 세자는 물론 시종하는 신하들 의관 정제하랴 사관 지필묵 준비하랴 여간 요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준비를 마치고 동관 정문을 나서려는데 수문장이 제지하고 나섰다.
"세자 저하 나가시는 길을 왜 막느냐?"익위 서택리가 청나라 관리를 향하여 눈알을 부라렸다.
"세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저하이기 때문에 그렇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세자 저하 출입은 명령이 없으면 문을 열어드릴 수 없습니다."철저히 통제받는 조선의 왕세자세자 출입은 상부 명령사항이라는 것이다. 결국 세자 출입은 허용되지 않았다. 거처하는 관사에서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소현으로 하여금 좌절이라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아, 역시 나는 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몸이구나."조선의 세자이지만 이곳에서는 볼모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청나라는 가함대신을 비롯한 동관의 조선 관리들의 출입을 자유롭게 허용하면서 세자만은 철저히 통제했다. 조선에서 오는 사은사와 속환사들마저 자신들이 심사한 후 세자를 만나게 했다.
이튿날, 세자의 출입이 허가되었다. 허락받지 않고서는 거소를 출입할 수 없는 조선의 왕세자 소현은 동관을 나섰다. 빈객 박노, 보덕 황일호, 겸필선 이명웅, 익위 서택리와 양응함이 호종했다. 남탑 거리는 동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야트막한 집들이 엎어져 있는 거리 곳곳에 손이 묶인 포로들이 양지를 찾아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허름한 차림에 얼굴은 씻지 않아 구정물이 줄줄 흘렀다. 한인도 있었고 몽고인도 있었고 조선인도 있었다. 남탑 거리는 청나라의 공인된 포로 시장이었다.
조선인들은 행색으로 보아 금세 조선인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산발한 머리에 바지저고를 걸치고 있었다. 흰색이었으나 입고 자고 세탁을 하지 않아 청인들이 걸친 청의(靑衣)와 색깔이 비슷했다. 여자들도 많았다. 치마저고리를 걸쳤으나 헤지고 찢어져 보이지 말아야 할 속살을 드러 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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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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