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노점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에도 행복하다.
문종성
그래도 난 '괜·찮·다' 길은 사람들에게 묻는 게 최선이다. 많이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지도보다 정확한 게 사람이다. 그런데 이 멕시코란 나라. 사람들이 친절하긴 한데 다들 엄한 곳으로 방향을 가르쳐주니 찾기가 쉽지 않다. 날씨도 더 추워졌다. 결국 인텔리들이 모여 있겠다 싶은 병원으로 가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병원에서 친절하게 약도까지 첨부해줘 경찰서를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오른쪽으로 12블록, 앞으로 4블록, 다시 재차 오른쪽으로 3블록이면 경찰서가 나옵니다."
자전거로 20분 안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려준 약도를 들고 찬바람을 쐬며 12블록을 지나 다시 턴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마침 교통 경찰들을 만났다. 사정을 얘기하니 "거기 경찰서는 문 닫았어. 로스모치스에서 가장 큰 경찰서를 가야 해"라며 다시 수정된 약도를 그려 주었다.
"다시 앞으로 10블록, 오른쪽으로 9블록 가야 해."
경찰서만 찾을 수 있다면 이 정도 고생쯤이야. 가다가 숙소 구하기도 전에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타코부터 사 먹었다. 허겁지겁 입으로 밀어 넣으며 푸짐한 양과 맛에 허우적댈 때였다.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주인이 웃으며 감질나게 푸른빛을 띠는 고추를 권유했다.
"괜찮아, 맵지 않은 거야."
그렇잖아도 달달함 속에 살짝 매운 맛이 필요했는데 딸려나온 고추를 한 입 시원하게 베어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그러고는 잘 익었구나 생각하고 다시 타코를 집었을 때 입에서 열불이 나며 갑자기 눈물로 뿌얘진 세상 속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일단 눈물부터 쏟아내고는 타들어가듯 얼얼해진 입술 주위를 맹렬히 혀로 핥아내야 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콜라를 한 병 털어넣었다. 고추가 얘기와는 다르게 무척 매운 것이었다.
"맵잖아요!"
"그게 맵다고?"
주인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추를 씹어먹었다. 그리곤 여유 있는 한마디.
"맛있는데 뭘."
하긴 태어날 때부터 아니 조상 대대로 먹었을 테니 생득적 혀의 미각세포부터가 차이가 나는 게 어쩌면 당연하겠지 싶다. 그래도 '괜·찮·다.' 고추의 매운기도 없앨 겸 맛있었기에 한 접시 더 시켜먹고는 포만감에 만족할 수 있었으니까.
길을 물어물어 이윽고 경찰서에 도착했다. 영어를 할 만한 경찰은 없었지만 겨우겨우 내 말 뜻을 알아먹었다. (과테말라에서 배우려는 계획이지만 스페인어 공부가 필시 필요하다) 경찰들은 나를 아무것도 없는 사방이 빈 방으로 안내했다. 아마도 몇 달은 쓰지 않은 공간인 듯했다.
그것은 꼭 사고치는 사람 가둬놨을 법한, 영화에서 나오는 백색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만한 실내였다. 그래도 '괜·찮·다.' 최소한의 요건인 샤워 시설도 있고 어설픈 소파 형식의 침대도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