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틴고릴라가 있는 비룽가 산악지대의 콩고민주공화국의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김성호
여행은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76일간의 아프리카 배낭여행은 지금도 나의 삶 속에 커다란 힘으로 남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배낭 하나만을 달랑 메고 떠난, 말 그대로의 홀로 떠난 자유배낭여행이었다. 내전과 빈곤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인생의 진로를 걱정하는 아프리카 젊은이들을 통해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보기도 하고, 킬리만자로 정상의 녹아버린 눈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세계화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동부아프리카에서부터 남부 아프리카까지 종단하고, 마지막에 마다가스카르까지 여행하는 긴 여정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 케냐와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탄자니아,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잠비아, 보츠와나, 남아공, 나미비아에 이어 마다가스카르를 포함해 모두 14개국을 다녔다. 오토바이와 고물 트럭, '닭장차'라 불리는 현지 버스, 기차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하는 멀고도 힘든 여행이었다.
길게는 30시간 이상 버스나 기차를 타야했으며, 보통 하루에 12시간 정도 버스를 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서울과 부산이 버스로 4시간 반 정도인 것을 비교하면,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 서울과 부산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비포장도로에다 울퉁불퉁 패인 길과 먼지가 날리는 길을 2박3일 동안 꼬박 달리기도 했다. 혼자 다니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고독감이 몰려온 적도 있었지만, 마음은 늘 행복했다.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 그리고 문자 없는 아프리카의 역사가 나를 늘 반겼다. 에티오피아와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결합이었고, 남아공은 백인과 흑인의 공존이었으며, 마다가스카르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만남이었다. 이처럼 같은 아프리카 국가이면서도 14개국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프리카의 다양성이다.
여행하는 내내 현지에서 만난 아프리카인들과 세계의 배낭여행객들, 그리고 한국인 여행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하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플라밍고 떼가 있는 웰비스만까지 나를 차로 태워다주었던 나미비아의 할아버지와, 콩고의 비룽가 국립공원까지 마운틴고릴라를 같이 보러갔던 뉴질랜드 젊은이, 케냐에서 김광석의 노래 모음 시디를 복사해준 한국의 젊은 의사 배낭여행객, 여행책자 등을 빌려준 인터넷 여행카페 동호회원 등이 나의 이번 여행을 가능케 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나 혼자이지만, 여행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지인과 다른 여행객들의 도움이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동안 도움을 받은 사람들을 헤아려 보니, 아프리카 밤하늘의 별만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삶은 마음속에 늘 빚을 지고 사는 '빚진 인생'이었다. 남은 인생동안 도저히 다 갚지 못할 만큼 사람들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받아왔다. 먼 여행을 다녀오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고 사는 가를 깨닫게 된다. 여행은 이웃을 더 가깝게 만든다. 여행은 살아오면서 내가 보지 못했거나, 애써 보지 않으려고 했던 빚진 부분을 비춰주는 인생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