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동 어느 골목한기가 스며들것 같은 갈라진 담벼락에 기대어 핀 국화
김민수
골목의 집들은 낡은 옷을 깁듯이 낡은 그대로 하나하나 덧붙여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릴 적 그렇게 넓게 보였던 골목길은 혼자 걸어가기에도 좁은 골목길이 되어버렸다.
광주대단지 사건이 터진 후 철거민들이 몰려들면서 콩나물시루 교실도 모자라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했다. 끝번호가 거의 60번이 훌쩍 넘어갔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돈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가장 많이 했던 것 중 하나가 신문돌리기와 여름 한 철이지만 아이스케키장사였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신문돌리는 친구를 따라 골목길을 누비며 신문을 돌리기도 했었다. 아마 일주일 정도 하고 그만 두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사는 동네는 그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웃동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보다 사정이 더 나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 곳에 사는 아이들과 동질감을 느꼈고, 중고등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그 곳에 살았으니까.
골목길 사진을 찍어 돌아와 화일을 열어보니 몇몇 사진에 국화가 들어있다.
'내 누님 같은 꽃이여!' 노래가 나올 분위기는 아니지만 어두운 골목길, 갈라진 담벼락에 기대어 겨울을 나고 있는 국화는 마치 소외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