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한 그릇에 속이 뜨끈뜨끈, 추위가 확 풀리네!

추억의 맛 집, 정읍 구시장의 '옛날팥죽'

등록 2007.12.08 12:08수정 2007.12.0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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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팥칼국수) 뜨끈하고 달큼한 게 정말 맛있다. 팥죽 면의 쫄깃함에 차진 새알의 쫀득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이다.
팥죽(팥칼국수)뜨끈하고 달큼한 게 정말 맛있다. 팥죽 면의 쫄깃함에 차진 새알의 쫀득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이다.조찬현

“아주 이집 이름났어요. 나 이집밖에 안 와.”


정읍 가교동 저수지 윗마을에서 산다는 안석순(75)할머니는 매달 서너 번씩 찾는 집인데 팥죽이 정말 맛있다며 꼭 한번 먹어보라고 한다.

“팥죽 한 그릇에 3천원밖에 안 해”
“정말이에요?”
“시골이니까 싸게 받어.”
“그렇게 맛있어요?”
“잡숴봐야 알지, 설명을 못해 부러”

파안대소 팥죽집 입구에서 만난 할머니는 사진 찍는다며 웃으세요'하자 파안대소를 한다.'
파안대소팥죽집 입구에서 만난 할머니는 사진 찍는다며 웃으세요'하자 파안대소를 한다.'조찬현

가게 입구에서 팥죽을 쑤고 있는 주인장(65·최춘자)에게 가게 한지는 얼마나 됐으며, 어떤 음식이 맛  있느냐 물어봤다.

“촌에서 농사짓다 5년 전부터 했어요.”

‘에게 경력이 고작~’ 이런 염려는 붙들어 매라. 입구에서 만난 안 할머니의 주장에 의하면 주인장 할머니의 내공이 보통 솜씨가 아니란다.


“팥죽(팥칼국수)도 있고 새알(동지팥죽)도 있고 그러커든요. 새알은 찹쌀로 하고 팥죽은 밀가루 면으로 해요. 집에서 직접 팥 삶아갖고 걸러서 팔팔 끓여 미리 준비해둬요.”

팥죽에 넣을 면 “면은 반죽해서 하루저녁 냉장고에 넣어 숙성해요. 그러면 면이 쫄깃해져요.”
팥죽에 넣을 면“면은 반죽해서 하루저녁 냉장고에 넣어 숙성해요. 그러면 면이 쫄깃해져요.”조찬현



팥죽 주인장이 팥죽을 그릇에 옮겨 담고 있다.
팥죽주인장이 팥죽을 그릇에 옮겨 담고 있다.조찬현

김이 모락모락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팥죽
김이 모락모락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팥죽조찬현

팥죽그릇을 나르던 주인장의 딸이 한마디 거든다. 

“면은 반죽해서 하루저녁 냉장고에 넣어 숙성해요. 그러면 면이 쫄깃해져요.”
“5일시장인데 장날만 문 여나요?”
“쉬는 날이 없어. 추석 하루, 구정 때 이틀밖에 못 쉬어. 단골손님 때문에 못 쉬어.”
“하루에 몇 그릇 파나요?”
“못 판 날은 한 50그릇, 평균 70~80그릇 팔어”
“면은 칼로 숭숭 썰어 이렇게 털어갖고 팥 국물에 넣어서 10분 정도 끓여내.”
“반죽에 무슨 특별한 걸 넣나요?”
“소금하고 물 밖에 안 넣어.”

열린 창문틈사이로 식당내부를 살짝 들여다보자 손님들이 가득하다. 손님들 들고 나는 걸 보니 괜찮겠다 싶어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 오래된 건물의 허름한 내부가 오히려 정겹다.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천정과 바람벽의 벽지는 빛바랜 세월을 담고 있다. 주인장은 이집이 흙집이라고 알려준다. 새알이 더 맛있다며 권하는 걸 마다하고 그냥 팥죽으로 달라고 했다.

밑반찬 물김치와 배추김치
밑반찬물김치와 배추김치조찬현


팥죽 기본 상차림 죽 기본 상차림
팥죽 기본 상차림죽 기본 상차림조찬현


팥죽 팥죽 면의 쫄깃함에 차진 새알의 쫀득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이다.
팥죽팥죽 면의 쫄깃함에 차진 새알의 쫀득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이다. 조찬현


먼저 찬이 나오는데 갓 담근 배추김치와 훌렁한 물김치다. 찹쌀 풀을 써 김칫국을 만들었다는 물김치는 양배추와 양파의 아삭함에 감칠맛까지 듬뿍 담겨있다. 워낙 사근사근 시원하게 와 닿아 그 내용물을 살펴보니 잘게 썰어 넣은 양배추와 무 이파리, 파, 당근, 고추, 양파를 넣어 발효시켰다.

배추김치 맛도 유별나다. 황석어젓과 잡젓을 직접 담가 3년을 삭혀, 이 젓을 끓여 건져내 액젓으로 만들어 김치를 담갔다는데 젓갈의 오묘한 깊은 맛이 일품이다.

대접 한가득 푸짐한 팥죽은 새알까지 덤으로 넣어준다. 황설탕을 취향에 맞게 두어 스푼 넣어 휘~저어 한술 뜨니 뜨끈하고 달큼한 게 정말 맛있다. 팥죽 면의 쫄깃함에 차진 새알의 쫀득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이다.

차림표 팥죽(팥칼국수) 3천원
차림표팥죽(팥칼국수) 3천원조찬현


옛날팥죽 맛과 정이 넘치는 옛날팥죽집
옛날팥죽맛과 정이 넘치는 옛날팥죽집조찬현

속이 다 뜨끈뜨끈하다. 순간 추위가 오간데 없이 확 풀린다.

옆 식탁의 아주머니가 팥죽이 좀 적다고 하자 “쫌 기다리세요. 더 드릴께요”라며 두말없이 덤을 더 갖다 준다.

“더 달라면 더 주고 그래요.”
“서울에서 살다 여기(정읍) 온지 4년 됐는데 다니면서 보니까 여기가 제일 맛있습니다. 다른 집은 팥죽이 맹물인디 여기는 걸쭉하고 맛있어요. 집에서 한 것 하고 똑같아요.”

겨울비가 오락가락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르 녹아 내렸다. 추억이 담긴 옛날팥죽 한 그릇에 순간 추위가 확 풀렸다. 맛과 정이 넘치는 팥죽 한 그릇에 행복감이 가득하다.
#팥죽 #팥칼국수 #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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