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경회루 편액은 세자에서 폐위된 양녕대군 글씨다
이정근
조선의 왕도는 한양이다. 임금은 개성에 있고 한양을 지키던 세자는 축출되었다. 한양이 비어 있는 셈이다. 힘의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양녕을 내치기 위하여 머물렀던 개성. 이제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양녕을 폐위하여 경기도 광주로 유배 보낸 태종은 세자와 대소신료들을 불렀다.
“세자는 중전을 모시고 한양으로 먼저 돌아가라. 3전이 함께 움직이면 길이 좁아 곡식을 다칠까 염려된다. 과인은 후일에 돌아갈 것이니 정부, 육조, 대간도 한양으로 돌아가라 ”
자신이 환궁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다. 태종이 말한 3전은 대전, 중궁전, 세자전을 말한다. 개성을 출발한 세자가 한양에 입성했다. 유도한 대소신료들이 대대적인 환영을 펼쳤다. 조용히 환궁하려는 세자는 언짢았다.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요란을 떠는 그들이 부담스러웠다. 정비는 경복궁에서 하련하고 세자와 경빈은 창덕궁에 들었다.
내가 나를 잘 안다. “나는 임금 깜이 아니다”열흘 후, 태종이 한양에 돌아왔다. 경복궁에 환궁한 태종은 지신사(知申事) 이명덕, 좌부대언(左副代言) 원숙, 우부대언(右副代言) 성엄을 경회루로 불렀다.
“내가 나를 잘 안다. 나의 상(像)은 임금의 상이 아니다. 위엄과 행동거지가 모두 임금에 적합하지 않다. 내가 재위한 지 이미 18년이다. 이에 세자에게 전위(傳位)하려고 한다. 아비가 아들에게 전위하는 것은 천하고금의 떳떳한 일이요, 신하들이 간쟁할 일이 아니다.”폭탄선언이다. 그간의 전위 파동이 몇 번 있었지만 이번 전위는 작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양녕이 충녕과 친하여 변(變)을 일으킬 의심은 없으나 어제까지 명분의 지위에 있다가 이제 폐출되어 외방에 있으니 어찌 틈을 엿보는 사람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조현(朝見)을 정지하고 내선(內禪)을 행하고자 한다. 전위한 뒤에도 내가 마땅히 노상(老相)들과 임금을 보익(輔翼)하고 일을 살필 것이다.”“거두어 주소서.”
“18년 동안 호랑이(虎)를 탔으니 이제 내려올 만하다.”
전위 소식을 전해들은 영의정 한상경, 좌의정 박은, 우의정 이원과 육조 판서·육조 참판이 몰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성상의 춘추가 노모(老耄)함에 이르지 않고 병환도 정사를 폐지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원민생을 보내어 세자를 세우도록 청하고 세자가 조현한다고 아뢰게 한 지 몇 달이 못 되어서 전위하심은 절대로 옳지 않습니다. 더구나 내선(內禪)은 나라의 큰일이니 마땅히 인심을 순하게 하여야 하며 억지로 간쟁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아비가 아들에게 전(傳)하는 것이니 신하들이 간쟁(諫諍)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신하의 간쟁하는 법이 어느 경전(經典)에 실려 있는가? 나의 뜻이 이미 결정된 지 오래니 고칠 수가 없다. 다시 이를 말하지 말라.”
태종의 의지는 단호했다. 말을 마친 태종은 지팡이를 짚고 보평전(報平殿)으로 이어(移御)했다. 지팡이에 의지한 태종의 모습은 처음이다. 보평전에 도착한 태종은 승전환자(承傳宦者) 최한을 불렀다.